"대체 이게 뭐지?"
명함 갑 비슷한 크기의 두꺼운 종이 박스, 볼품없고 찌그러졌는데 도무지 기억이 없다. 한눈에도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누런빛에 겉의 글씨도 거의 다 지워졌을 뿐더러 더구나 외국어라서 도통 모르겠다.
궁금한 마음에 호기심을 더하여 조심스레 열어 보았지만,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득 '혹시? 맞다' 엄마가 생전에 착용하시던 보청기였다.
세상에나! 아니, 이것이 왜 여기 있지? 한참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핑 돌면서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씩 가물가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 전이었으니 30년이 훨씬 넘은 물건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의 반응이 이상했다. 뭐라고 말씀드려도 대뜸 알아듣지를 못하고 두세 번씩 거듭해야 했다. 처음엔 이유를 모르기도 했거니와 나의 성숙하지 못한 마음에 '왜 그렇게 못 알아듣느냐'고 핀잔하곤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고 느껴져 어느 날 모시고 병원 가서 진료 받고 보니 죄송하게도 난청이 심각하다고 했다. '어떤 엄만데, 그런 줄도 모르고…' 덜컥 후회와 죄송스러움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당연히 보청기를 해드리려고 알아보니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을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금액을 들은 엄마도 당황하신 듯 다음에 하겠다면서 그냥 빨리 집에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끄셨다. 하지만 그대로 갈 수는 없었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상품을 결정했다. 보청기를 착용하시더니 윙윙거리고 불편함을 호소하시기에, 처음이라 그런 것이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 진정시켜 드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다고 하시며 불편함 때문인지 가끔 착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얼마 후부터는 부끄럽다는 말씀도 없고 두어 번씩 말씀드리던 일도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간 잘 사용하시던 '보청기 분실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직장에서 근무 중인데, 옆 직원이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울렸다. 깜짝 놀라 들어보니 이웃분과 유성 온천으로 목욕하러 가셨다가 그만 보청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주위 시선도 있기에 '다시 더 좋은 것으로 사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편히 계시라'고 말씀드렸다. 이어 '그렇잖아도 오래되어 신형으로 바꿔드리려 했었다'며 안심시켜 드렸지만 잘 알아듣지를 못하셨다. 더 이상 큰소리로 말씀 드릴 수도 없고 해서 '알겠다'고만 조용하게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찬찬하신 엄마가 어쩌다가 그런 걸 분실하셨을까?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는데 약간 짜증도 났다. 서울 오빠에게 엄마 보청기 하셔야 한다고 이야기를 드려볼까? 속 좁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며칠 후, 엄마를 모시고 보청기 대리점에 갔다. 지난번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엔 선택이 좀 수월했다. 직원이 가장 비싼 제품을 추천하는데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하셨다. 그러고는 제일 싼 것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분명 딸이 돈 쓰는 것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란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다음 단계의 것으로 결정했다.
기술이 발달해서인지 전에 사용하시던 것보다 작은데다 착용감도 좋다고 하셨다. 더구나 밖에서 잘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없으니 부끄럽다는 말씀도 없으셨다. 그 후 몇 년 동안 잘 착용을 하셔서 보청기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었다.
90세를 바라보면서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시고 병원 출입이 잦아지더니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그 연세에도 정신은 맑으셨기에 엄마의 낡은 손가방에는 보청기 건전지까지 늘 챙기셨는데 그때 들고 가셨나 보다.
일 년 가까이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유품을 정리하는데, 있더라며 요양보호사가 건네준 것이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장롱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었다.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엄마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저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값이 비싸더라도 제일 좋은 것으로 해드릴 걸 '죄송해요 엄마' 회한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푼 아끼려고 잔머리 굴렸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돌아가시고 난 뒤 너무나 보고 싶은 엄마였다. 엄마 몸의 일부가 되었던 보청기, 떨리는 손으로 귀에 꽂아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그리워하고 속울음으로 불렀건만 대답 한번 없으신 것이 보청기가 없어 듣지 못하셨기 때문이었을까? 꿈속에서라도 한번 뵐 수 있을까 했건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뵙지를 못했다. 눈물, 콧물이 뚝뚝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냥 아무 곳에 버릴 수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생각 끝에 엄마가 잠들어 계신 곳에 추석 성묘 겸 가서 살짝 묻어 드리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아기 천사 같은 손녀도 보았고요. 편히 쉬셔요.'
엄마! 이제 제 목소리 잘 들리시지요?
서옥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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