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한 노회한 스탈린은 중공의 마오쩌둥을 끌어들였다. 한국전에 뛰어든 중국 공산군은 인해전술로 전선을 교란했다.
따라서 중공이 개입만 안 했더라도 대한민국은 지금 압록강까지 국토를 확장했을 것이었다. 영화물등급위원회가 중국 영화 '1953 금강대전투'의 국내 비디오 유통을 허용하여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그럼 왜 이런 사달이 빚어진 것일까. 이 영화의 배경인 금성전투는 1953년 6~7월 정전 직전 강원 화천·철원 일대 영토를 놓고 한국군·유엔군 10만 명, 북한군·중공군 24만 명이 격돌한 6·25 최후의 대접전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국내 유통 소식이 알려지자, 재향군인회 등에서 "이런 영화가 어떻게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느냐""는 참전용사·유족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한 함의(含意)였다.
금성전투 당시 우리 국군의 전사자와 부상, 실종자까지 합하면 무려 1만 4000여 명의 인적 피해, 그러니까 말 그대로 피로 물들었던 비극을 중국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를 어찌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사대주의(事大主義) 정부라지만 그에 종속하여 바람 앞에 풀처럼 눕는 영화물등급위원회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심한 표현으로 간신이라고 보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부동의 한국 영웅이다. 하지만 만약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내용의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 내지 비디오 유통을 허용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영화물등급위원회의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부터 파면시키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영화는 논픽션보다 픽션이 많다. 흥미를 유발시켜 흥행과 연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선(線)을 넘어선 안 된다. '선'이란 비단 영화에 국한하지 않는다. 부부간에도, 부자간에도 일정한 선이 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불화와 반목이 시작된다.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자 '1953 금성대전투' 국내 상영을 기획했던 수입사가 부담을 느끼곤 이를 전격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를 수입하기로 했던 위즈덤필름 대표는 사과문을 내고 "국민분들께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려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해당 영화의 해외 저작권자와 판권 계약을 파기하였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도 국외 비디오 등급심의가 취하됐다"라고 밝혔다. 당연한 조치였긴 하되 수입하려고 했던 애초 취지를 살펴보면 여전히 화가 나는 걸 제어하기 어렵다.
아무리 돈이 좋기로 민족적 자존심까지 팔아서야 되겠는가? 한 마디로 위즈덤필름은 국민감정의 선을 넘었다는 주장이다. 앞 뒤 맥락도 재지 않고 중국 영화 '1953 금강대전투'의 국내 비디오 유통을 덜컥 허용한 바 있는 영화물등급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현 정부에 잘 보이려는 간신과 같다고 위에서 비판하였다.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는 일관된 입장을 지니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기회주의자와 간신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가수 나훈아가 한 마디 거든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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