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晝夜)에 흘은이 녯 물리 이실쏜야
인걸도 물과 갓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 -황진이
아내와 산책하던 도솔산 오솔길을 걷노라니 황진이 시조가 떠올랐다. 다니던 길은 그대로인데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인 듯했다. 전에 있던 소나무, 갈참나무, 아가위나무, 산초나무, 상수리?도토리나무도 옛 모습은 변한 것이 별로 없는데 내 또 다른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그런 거 같았다.
'땀나면 수업 못한다'고 출근할 때 내가 질 가방을 메고 따라오던 아내 모습이 눈에 밟혔다. 여기는 전에 내가 유성고 출근할 때 거쳐야 하는 월평상수도 본부 울타리 옆길 중간지점이다. 아내가 도솔산 정상으로 가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이 곳이 바로 가방을 질 주인공이 바뀌는 지점인 셈이다. 아내가 메었던 가방이 내 등으로 자리바꿈하는 순간 아내는 도솔산 정상으로, 나는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달리 했다. 어쩌면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이라는 유행가 가사를 방불케 하는 곳이고도 했다.
내 그림자가 생각나면 이따금씩 걷는 길인데 오늘 따라 왜 이리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여러 세월 같이했던 아내와의 추억이 물씬 묻어 숨 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당신 가방은 내가 질게요. '
환청이지만 그 다소곳한 목소리는 지금도 솔바람을 타고 나를 울리고 있었다.
순간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아내와의 과거사 이런 일 저런 일이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있었다.
약혼식 끝나고 향천사 오솔길 걷던 추억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설레는 가슴으로 처음 잡아 본 아내의 손목 체온도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근거렸던 떨림이 못 잊는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어쩌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연상의 회상이 복잡하게 뒤얽히고 있었다. 7남매의 장남 아내로 고생만 시켰던 한의 세월이 나를 울리고 있었다. 여름에도 집 비워 달라는 주인의 말에 이삿짐 싸던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집 없는 설움으로 내 집 갖기까지 31번이나 이삿짐 쌌던 아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많은 책을 박스에 담아 묶느라 땀 흘리던 아내의 힘겨운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가정 평화를 위해 바가지 한 번 긁지 않던 모나리자 미소의 얼굴이 나를 어렵게 하고 있었다.
가난 속의 신혼살림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밝은 표정만 지었던, 또 다른 내 그림자가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좋은 옷, 별난 음식,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했던 바보 남편의 지난 세월이 원망스러웠다.
예쁜 얼굴 분칠하고 바를 화장품 한 가지 챙기지 못했던 모자란 지아비 -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모든 걸 놓치고, 보내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한숨으로 힘들어하는 바보가 미워졌다. 넋두리 신세가 돼서야,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자신이 왜 그리 미워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푸념 같은 넋두리 한을 몇 자 얽어 아내에게 바치고자 한다.
이것만은 안 돼요, 안 돼.
7남매의 장남아내 지는 짐만 덜어줬어도
보내는 맘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텐데
집 없는 이의 설움 조금만 갖게 했어도
울컥하는 마음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31번씩이나 이삿짐 싸는 일 없었어도
이렇게 미어지는 마음은 아녔을 텐데
좋은 음식 원 없이 한 번 먹게 했어도
보내는 맘 이리 무겁진 않았을 텐데
평생 한과 고달픔으로 맥질한 아내가
얼룩진 마음으로 못 올 길을 가다니
이것만은 안 돼요, 안 돼,
아들딸 뒷바라지에 손발이 다 닳더니
짝짓는 날 그걸 못 보고 그냥 갔어요.
이것만은 안 돼요, 안 돼,
당신한테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데
고생만 시키고 마냥 그냥 보내다니
이것만은 안 돼요, 안 돼,
당신 없으면 나 못 사는 줄 알면서도
며느리 사위 보지도 못하고 보내다니
이것만은 안 돼요, 안 돼,
천만겁 다해도 내 반쪽인 임아, 내 여인아,
하늘과 땅 사이가 멀고멀어 마음뿐이니
천국에서나 편히 쉬고 영면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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