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
지금은 어떤가 2021년의 추석을 앞둔 마음은 한없이 허전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빈집으로 남았던 고향집 마저도 이제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집을 팔기로 하여 집을 철거하게 된 것이다. 고향집은 철거하기엔 아까운 제대로 지어진 목조주택이다. 비록 지붕은 기와가 아닌 양철 지붕이었지만 골격은 개량된 한옥 같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조금 부지런했다면 시골의 허름한 집을 잘 고쳐서 쓰는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필자의 전문분야 실력을 발휘해 누구보다도 잘 리모델링해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터전을 대전에 두고 그러기는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동네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큰길이 새로 생겨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이로 인해 공장 건물들이 주변에 많이 들어와 예전의 시골 동네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을 철거하기 전에 몇 가지 챙길 게 있어 방문한 고향집 마루에는 할머니가 신으셨던 신발이 아직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방안에는 달력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필자는 그 달력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할머니가 집을 떠나신 2007년 어느 달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뜯겨나가지 못한 달력과 회중시계가 그때 이후로 시간이 멈춘 듯 걸려있는 모습은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고향집에 대한 추억과 애틋한 감정들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와 같은 사정으로 또는 다른 이유로 폐허처럼 남아있는 빈집들이 전국적으로 엄청 많으리라 생각한다. 직접 가서 살기도 여의치 않고 철거하자니 아쉽고 해서 말이다. 집이라는 물리적 구조물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바람과 추위 더위를 막아주는 원초적 기능 외에 집의 공간구조나 질감, 색체, 냄새, 분위기 등이 제공하는 감성적인 경험들을 제공한다.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처마는 음악을 연주하듯 빗방울이 떨어지게 하는 악기가 되고, 바람을 막아주는 창호지는 나른한 오후의 햇빛을 온화하게 투과시켜 낮잠을 재촉하는 조명이 되며, 뒷곁의 대나무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벽에 걸린 회중시계의 똑딱 소리는 적막한 겨울밤에 스산함을 더하는 음향효과가 된다. 집이 경험케 하는 이러한 오감을 자극하는 느낌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뇌리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의 아이들은 고향집에 관한 어떤 감각들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요즘 제일 먼저 몇 층에 살았는지부터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유일하게 땅과 접한 1층과 중간층 그리고 최상층에서 경험한 상황들이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평면구조는 평수에 의한 차이를 빼곤 거의 똑같은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와 층수까지 같았다면 고향집에 관한 물리적, 공간적 경험의 차이는 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혹자는 건축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고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필자도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과거 십여 년을 살았던 고향집이 주었던 풍부했던 오감의 체험을 20년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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