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허전한 추석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 허전한 추석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 승인 2021-09-09 09:44
  • 신문게재 2021-09-10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2021072201001412100054101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를 온 필자는 그 후 한참 동안 추석을 앞두고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교차했었다. 하나는 할머니가 반겨주는 고향 집에 간다는 들뜬 마음과 다른 하나는 만원 버스를 타고 갈 힘겨운 여정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명절 때면 터미널은 버스를 타기 위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탈 수 있었던 버스 안은 입석까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들로 채워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상태로 1시간 이상을 덜덜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가야만 했으니 거부감이 들만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지친 몸도 할머니의 환한 미소와 푸근한 고향 집의 냄새로 인해 금세 생기를 되찾곤 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2021년의 추석을 앞둔 마음은 한없이 허전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빈집으로 남았던 고향집 마저도 이제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집을 팔기로 하여 집을 철거하게 된 것이다. 고향집은 철거하기엔 아까운 제대로 지어진 목조주택이다. 비록 지붕은 기와가 아닌 양철 지붕이었지만 골격은 개량된 한옥 같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조금 부지런했다면 시골의 허름한 집을 잘 고쳐서 쓰는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필자의 전문분야 실력을 발휘해 누구보다도 잘 리모델링해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터전을 대전에 두고 그러기는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동네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큰길이 새로 생겨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이로 인해 공장 건물들이 주변에 많이 들어와 예전의 시골 동네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을 철거하기 전에 몇 가지 챙길 게 있어 방문한 고향집 마루에는 할머니가 신으셨던 신발이 아직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방안에는 달력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필자는 그 달력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할머니가 집을 떠나신 2007년 어느 달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뜯겨나가지 못한 달력과 회중시계가 그때 이후로 시간이 멈춘 듯 걸려있는 모습은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고향집에 대한 추억과 애틋한 감정들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와 같은 사정으로 또는 다른 이유로 폐허처럼 남아있는 빈집들이 전국적으로 엄청 많으리라 생각한다. 직접 가서 살기도 여의치 않고 철거하자니 아쉽고 해서 말이다. 집이라는 물리적 구조물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바람과 추위 더위를 막아주는 원초적 기능 외에 집의 공간구조나 질감, 색체, 냄새, 분위기 등이 제공하는 감성적인 경험들을 제공한다.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처마는 음악을 연주하듯 빗방울이 떨어지게 하는 악기가 되고, 바람을 막아주는 창호지는 나른한 오후의 햇빛을 온화하게 투과시켜 낮잠을 재촉하는 조명이 되며, 뒷곁의 대나무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벽에 걸린 회중시계의 똑딱 소리는 적막한 겨울밤에 스산함을 더하는 음향효과가 된다. 집이 경험케 하는 이러한 오감을 자극하는 느낌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뇌리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의 아이들은 고향집에 관한 어떤 감각들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요즘 제일 먼저 몇 층에 살았는지부터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유일하게 땅과 접한 1층과 중간층 그리고 최상층에서 경험한 상황들이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평면구조는 평수에 의한 차이를 빼곤 거의 똑같은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와 층수까지 같았다면 고향집에 관한 물리적, 공간적 경험의 차이는 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혹자는 건축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고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필자도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과거 십여 년을 살았던 고향집이 주었던 풍부했던 오감의 체험을 20년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