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 |
하지만 이번 자치경찰제는 기존 국가경찰 조직과 신분은 물론 업무도 사실상 그대로 둔 채,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일정 업무를 '자치경찰 사무'라 이름 짓고 시·도별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자경위)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국가경찰과는 기능과 역할이 구별되는 만큼 자체적인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재원을 갖춘 다른 나라의 자치경찰제와 비해 다소 특이한 경찰제도임은 분명하다.
자경위의 미온적 태도도 한 몫하고 있다. 시·도 단위로 구성한 자경위가 최근 몇 달 동안 심의·의결한 안건의 상당 부분은 기존에 시도경찰청이 해 오던 경찰업무를 승인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법으로 위임받은 전보, 직위해제, 징계 등 임용권의 대부분을 다시 시·도경찰청에 돌려줌으로써 제도변화를 외면한 것은 아쉬움이 많다. 자경위가 이를 행사하기에는 아직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임용권을 행사함으로써 법적 흠결을 조속히 치유하도록 압박할 기회를 포기했고, 임용권을 다투는 경우 쟁송수행 부담을 회피하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자경위의 존재 자체가 시민의 소중한 세금을 삼키는 고비용 저효율의 옥상옥(屋上屋)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시민들이 자치경찰제 시행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데에는 자경위가 경찰사무를 이제 막 배워나가는 현실도 작용한다. 그러나 현재 구성된 제1기 자경위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현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접근방식을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자치경찰'이라는 개념에서 '경찰'을 상수(常數)로 두고 기존의 경찰활동을 어떻게 하면 '자치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천착했다. 혹은 자경위와 같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를 두고 그런대로 잘만 운용하면 그런 게 자치경찰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경위와 사무국 파견공무원들이 하루빨리 학습하려는 '경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익숙한 국가경찰방식이라는데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국가경찰은 공무원인 경찰정책가가 전문적으로 경찰정책을 수립하고 후견인적 지위에서 보호해 줄 객체에 불과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경찰 철학이 지배해왔다.
물론 국가경찰제 하에서도 국민의 경찰이 되기 위한 노력이 상당 부분 진척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주도적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일부 자치경찰 전문가들조차 자치경찰제의 최종목표는 단지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재정이 분리되는 이원적 자치경찰제라고 믿는다.
따라서 기존 경찰활동의 철학적 프레임을 유지한 채, 단지 주관기관이 국가기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변경되면 자치경찰의 이념이 구현되는 것처럼 속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치경찰제의 목적은 시도별 실정에 맞는 치안행정과 지방행정의 연계서비스로 효율적 종합행정을 제공하여 원스톱 민생치안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치경찰시스템과 지방행정시스템의 화학적 결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시민들이 자치경찰을 본격 체감하기 위해서는 경찰청은 물론 지방행정의 중추인 시도와 행정안전부의 역할 확대가 매우 중요하게 됐다.
자경위는 경찰정책 수립 단계에서의 시민공모제부터 경찰서비스 평가, 특히 현장경찰활동에의 주민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위원회 운영의 변화가 요구된다. 시·도와 행정안전부 역시 시민안전실, 도시주택국, 교통건설국 등 지역 치안과 유관한 지방행정부서 개편과 지방행정지원을 통해 자치경찰제 시행에 상응한 연계기능 강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자치경찰제에서 '자치'는 '경찰'의 수식어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자치경찰의 경찰활동 정의를 새롭게 할 때다. /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