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기 내포본부 기자 |
우연히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엿듣게 됐다. 은행 상담원의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타 지역에 연고를 둔 지방은행이었다. 연 대출금리 3% 초반을 자랑하며 계좌를 개설하고 급여의 일정 부분을 통장에 넣어두면 금리가 저렴해진다고 했다. 다른 은행보다 저렴한 금리라 장점이라는 상담원은 연신 자신이 속한 지방은행에 대한 장점을 읊어나갔다. 역사까지 설명한 대출상담원은 우대금리를 약속하고 고객의 서명을 받아냈다.
불현듯 충청은행이 떠올랐다. 충청은행이 건재했다면 지역민이 타 지역까지 손을 뻗었겠느냔 생각이 스쳤다. 지명을 내건 은행 하나 없는 충청이 못내 아쉬웠다. 1998년 IMF 위기에 휩쓸려버린 충청은행이 떠나고 난 빈틈을 타 지방은행이 차고 들어온 것에 대한 일련의 분노마저 들었다.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대전에 각 1곳씩 영업점과 지점이 있다. 전북은행은 2008년 지점 개설 이후 점차 지점을 확대하면서 6곳까지 확대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충청권 지방은행 재건이 고개를 들고 있다. 4개 시·도 중 충남도가 주도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TF팀을 구성해 초기 출자금을 3000억원 규모로 하고, 영업지역을 충남·대전·세종·충북 본점 외 10개 지점을 둔다는 계획을 세웠다. 영업 대상은 중간 신용 그룹의 지역민과 중소기업에 맞춘 대출을 구상 중이다.
통계로만 봐도 설립 요건은 충분하다. 통계청의 '2019 지역 소득(잠정)' 통계를 보면 충남의 지역 외 순 수취 본원 소득은 마이너스 25조 원이다. 전국 최하위다. 마이너스는 곧 돈이 지역에서 돌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북도 마이너스 13조 원이다.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효율적 자금 조달도 부족하다.
타지역은 어떨까. 총자산 107조 원인 부산·경남은행은 권역 예금은행 대출금 47.1%를 차지해 지역경제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총자산 61조 원인 대구은행은 49.2%, 총자산 45조 원인 광주·전북은행은 49.7%로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효율적 자금 공급을 담당한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충청 지방은행 설립 필요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깊이 검토해보겠다고 답하면서 재건의 힘이 실리고 있다. 충청인들의 요구도 있다. 충남도가 충청권 19세 이상 1000명을 조사한 결과 58.4%가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당시 충청은행을 회상하는 이들은 지역에 연고를 둔 은행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지역밀착형 경영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상황을 잘 아는 지방은행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내 지역, 내 고향에 건재한 은행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그 날이 오길 희망한다. 대전 중구 오류동에 본점을 뒀던 충청은행의 향수는 여전하다. 사람도 길도 변했겠지만, 길이 품은 기억은 그대로니까. 방원기 내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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