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대표변호사 |
그런데 대한민국헌법 제104조 제3항에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결국 민주당 이탄희 의원의 주장은 헌법을 무시하고 대법원장의 신임 판사 임명권을 뺏어 국회와 시민사회단체에 주자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대한민국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여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고, 제106조 제1항에서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법관의 독립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규정은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한 참혹한 결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의 우리나라는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었기에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무시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엄청난 정치탄압과 숙청이 비일비재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사법부의 독립이 유명무실했던 독재정권 시절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야당 정치인들이 사형을 선고받거나 투옥돼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한 전력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나 히틀러의 독일처럼 독재자가 존재했던 국가라면 쉽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6.25전쟁 중에 판사가 아닌 공산당원이 주도하는 인민재판에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사형되었던 많은 민간인도 이러한 측면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 따라 사법부는 입법부, 행정부와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헌법 제104조 제1항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에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해 여전히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는 대통령과 국회를 통한 사법부의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해 사법부의 폭주를 막는 견제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최근 일련의 여당 인사들에 대한 불리한 판결이 잇따르자, 신임 판사 임용 권한을 여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움켜쥐고 사법부를 직접 통제하겠다는 전직 판사 출신 국회의원의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법관들이 일선 판사들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줄줄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본의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되기를 원했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법관들이 일선 판사들에게 정부 정책 기조에 맞게 판결하라는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체제에서도 이러한 작태가 벌어지는 마당에 모든 신임 판사의 임명을 여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결정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지 눈앞에 선하다.
대한민국헌법을 비롯해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나누어 상호 견제하게 한 것은 기나긴 세월 속에 왕정과 독재국가를 모두 경험했기에 권력을 나누고 그 권력기관이 상호 견제를 해야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는 역사적 교훈에 따른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 다수당의 총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있기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상호 독립돼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법부의 구성원마저 다수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국회에서 선출한다면 다시 왕정이나 독재국가로 복귀하자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돌이켜보면 야당이 다수당이었을 때 즉, 대통령과 다른 당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했던 시절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높게 보호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종오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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