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사운고택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 흥남동로 989-22에 자리한 양주 조씨(楊州 趙氏) 종갓집으로 조태벽(1645~1719)이 입향조이며 1984년 국가 중요 민속문화재 198호로 지정등록 되어 조응식 가옥이라고도 하였으나 지금은 12대 종손인 조환웅이 그의 고조부인 조중세(1847~1898)의 자(字) 사운을 따서 이름을 붙였지요. 사운이란 구름 같은 선비를 뜻하지만 조중세가 문경 현감으로 있을 때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홍성 본가의 곡식을 가져다 나누어주었으며, 고종 31년 홍주의병 봉기 때는 군량미를 보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가입니다. 꽃비가 내린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우화정(雨花亭) 현판은 조선 3대 묵죽화가인 영조 때 문신 자하 신위(1769~1845)가 썼으며, 수루(睡樓) 누마루 아래 평안을 기원하는 천하태평과 건곤감리 팔괘를 새겨놓았습니다.
사실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은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이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여 이제는 보편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장르로 그동안 대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하였습니다. 작가는 녹슨 철근과 쇳조각 파이프, 볼트너트 등 폐기된 금속 건축자재들을 용접하여 모아이 석상 1,2,3, 이중성, 장승남녀, 술병을 든 자화상, 휴대폰 중독이 된 IQ200, 책 읽는 거미, 개미 등의 <상생(相生)어울림전>은 크기가 2m가 넘는 대작으로 이국적인 풍경과 일상의 우리 삶 이야기를 새로운 경험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360년 된 고택에 모아이 석상이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AD400~1500년에 만들어진 모아이 석상은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조각되었다고 하지요. 설치미술이란 어떤 장소에 설치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작품 못지않게 장소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므로 조상의 얼이 담긴 사운고택의 전시는 3차원의 멋진 공간연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무대에 선 작가는 말주변이 없다며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하고는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순박한 분이었습니다. 사실 이태진 작가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이번 전시회를 위해 부랴부랴 설치미술가라는 명함을 새기고 서양화가인 <신소갤러리> 손현숙 관장의 주선으로 첫 전시 무대에 서게 되었던 게지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왔던 그의 예술적 재능은 오래전부터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었고, 이튿날 공주 반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이미 해장술에 기분이 좋아진 작가는 대문을 열어주면서 조그만 정사각형의 철 조각이 수없이 연결되어 바람의 방향이나 내방객에게 안팎의 경계를 보여주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대문이라며 어제와는 달리 유쾌하게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시설보육원에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용접의 달인으로 자신의 삶을 곧추세웠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전문가에게 한 번도 사사한 적은 없지만, 설치미술에 대한 창의적 가치와 자긍심은 대단하였지요. 술을 좋아하는 작가 자신을 표현한 자화상이나 휴대폰에 중독된 아들을 모티브로 소프트 조각 작업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근본을 탐구하며 대중의 고정관념을 해체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또한, 일상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그의 삶이 서사로 읽혀지는 예술혼은 분명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60 평생 앞만 보고 살아온 그가 이제 숭고한 예술가로 거듭나려는 투박한 아우성은 대전 설치미술계의 아카이브로 남을 것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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