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시내에 각종 터미널 산재해 불편·위험
교통·운송분야를 외곽으로 이전해 기능분산
종합터미널 조성해 동대전 개발 원동력化
1970년대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운영된 시외버스터미널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
▲시내에 터미널 6개 '혼잡'
대전이 삼남(三南)의 관문으로 불린 것은 수도 서울과 충남·전라·경상도를 잇는 중간지점이면서 경부선·호남선이 경유해 각종 터미널이 대전에 산재했기 때문이다. 대전시정백서에 따르면, 대전에 시외버스터미널이 등장한 것은 1954년 대흥동 466번지에 전북여객 정류장이 설립되면서다. 1961년에는 중부교통과 신진여객이 용전동과 대흥동에 또다른 정류장을 만들었고, 현재 중구청 앞에 대림빌딩 자리도 시외버스터미널이 운영되던 부지다. 한진고속과 동양고속이 동구 정동에 터미널(1186㎡)을 운영했고, 벤즈고속버스와 그레이하운드 회사는 동구 중동(585㎡)과 삼성동(1157㎡)에 각각 차고지를 둔 터미널을 꾸렸다. 당시에는 고속·시외버스 운송회사가 각자 정류장을 마련해 승객을 유치했고, 운행노선도 서로 겹쳐 같은 목적지 방향의 다른 회사의 버스를 추월하려고 과속 경쟁을 벌였다. 더욱이 시청과 지방법원, 지방검찰청, 경찰서, 세무서, 문화원, 도립병원 등 도시 모든 기능이 대전역전에 밀집한 상태서 터미널이 여럿 운영돼 혼잡과 사고위험을 키웠다.
1970년 10월 대전시외버스 공용차고지 중도일보 보도(사진 왼쪽)와 1959년 도로를 무허가 점유한 화물트럭터미널 고발기사. |
▲동대전 개발 소외론 붉어져
대전역 주변에 도시의 모든 기능이 집중되었을 때 경부선 건너편의 동대전은 개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론이 처음 제기됐다. 보문산 일대의 문화동과 태평동이 서대전으로 여겨질 때 용전동과 대동 등의 동대전은 대전역에서 가까우면서도 철도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낙후됐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1968년 1월 중도일보 기사를 보면 당시 유기붕 동대전개발위원장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동대전은 남향이라 따뜻하고 고지대로 배수가 잘돼 살기 좋은 곳이나 대전시 개발에서는 제외돼왔다"라며 "물기 있는 생선 한 마리만 사 먹으려 해도 1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대전역에 나가려해도 철길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라고 불균형을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에 중도일보 다른 기사에서도 동대전의 낙후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북으로 놓인 경부선철도에 진작에 지하도나 육교처럼 적극적인 통행책이 마련되었다면 오늘과 같이 초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동대전 교통의 핵심을 이루는 홍동육교와 성남지하차도가 1971년 조성계획이 발표돼 1984년에야 개통됐는데, 운행열차가 훨씬 적은 호남선의 서대전육교는 1970년 이미 개통했던 것을 보아도 동대전 개발은 상대적으로 늦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971년 3월 중도일보 사설에서는 "대전의 자연적 발전 추세는 서부 즉 유성 및 가수원방면으로 진전되고 있어 동부대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낙후지역이 될 가능성이 많다"라고 분석했다. 이때 대전역에 밀집한 기능 중 교통·수송시설을 동대전으로 옮겨 동부지역을 개발하는 계획이 발표된다.
▲터미널 개발과 택지개발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대전 용전동에 대전톨게이트가 마련되면서 동대전 개발을 위한 터미널 통합·이전사업은 본격화됐다. 1970년 12월 회덕~전주 사이 호남선까지 개통되고 1975년 영동고속도와 1978년 중부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그동안 철도가 담당하던 장거리 여객 수송기능을 고속버스가 대체하면서 대전은 통합터미널 조성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1970년 8월 중도일보 보도를 보면 충남도가 대전시외버스터미널 설치허가 예정지역을 변경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가 게재됐다. 대전시가 당초 시내버스 종점인 가양동 일대에 시외버스터미널 예정지역을 설정했으나 충남도가 건설부에 이전을 요청해 대전역에 가까운 삼성굴다리 부근으로 변경하려는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기사는 "시외버스터미널 설치에 있어 동대전 발전을 저해하는 처사는 시민들의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동부시외버스터미널 개발이 동대전 개발을 위한 사전 포석임을 드러냈다.
1978년 완공한 대전동부고속버스터미널과 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사진=대전시 제공) |
▲시민들의 5대 숙원 '해결'
동부 대전의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1968년부터 신문지면에서 관측된다. 그해 6월 중도일보는 3면 보도를 통해 '시가지 균형발전 절실'이라는 기사에서 당시 박병배 의원이 균형개발을 위해 동대전역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이같은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당시 용전동 일원의 동대전 개발에 대한 욕구가 적지 않았음을 방증하고 있다. 같은 이유에서 1970년대 용전동 터미널 개발사업은 대전시민들의 5대 숙원사업으로 여겨질 정도로 큰 주목을 끌었다. 김보성 전 대전시장이 남긴 회고록 '질러가도 십리 돌아가도 십리'를 보면 용전동 고속버스터미널 조성사업에 여러 난관을 뚫고 끝까지 관철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부지로 지정한 곳은 애경원의 한센인 생활시설이 있었다. 전염력 없는 음성의 한센인 30여 명이 거주하는 곳에 터미널을 세우기 전 이들을 설득하고 옮겨서 삶을 이어갈 부지를 물색하는 게 우선 과제였다.
1976년 김보성 시장(사진 가장 왼쪽)이 용전동 터미널예정지의 애경원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 |
정림동과 유성 원신흥동이 각각 추천됐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결국 터미널 조성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될 지역에 이전부지를 마련한 곳이 지금의 용전동 한국전력 대전본부 뒤편이었다. 한센인들의 반대를 설득해 이전시킨 뒤 1978년 12월 용전동 동부고속버스종합터미널 조성사업이 준공했다. 이번에는 시내에 산재한 고속버스 회사들이 도심에서 멀어진 신규 종합터미널로 이전을 거부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도심 8개 정류장을 지정 폐쇄 결정하는 강력한 행정지시가 있고 난 뒤에야 터미널 이전이 가시화됐다.
2016년 작고한 김보성 전 시장은 회고록을 통해 "시내 좁은 공간에 정류장이 난립해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이 상존해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라며 "어떠한 난관이나 어려움이 있다 한들 대전시의 발전과 시민 생황의 인전과 보건을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며 당시 결의에 찬 의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1975년 대전역 인근에서 운영된 고속버스터미널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
1973년 대전역 인근에 시외버스정류장 모습. (사진=대전시청 제공) |
1971년 동부대전고속도로 주변 개발계획 설명회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
1979년 대전 신내에 위치한 시외버스터미널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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