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해진 지폐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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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해진 지폐를 보며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9-0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고사인물도는 말 그대로 고사나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어떠한 사건이나 인물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본보기로 삼거나 반성의 계기로 삼는다.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근신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 살아나 묵언의 스승, 조언자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위로받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

고사인물도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글, 조각, 건축 등 표현 가능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사건 당시 구축물 보전 방법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 국보, 보물, 유적, 기념물 등으로 문화재, 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 제작기술이나 대표성, 독자성, 차별성이 가미되기도 한다.

많이 해진 지폐를 거스름돈으로 받았다. 생각해보니, 화폐도 기리기 위해 가려 뽑는 것 중 대표적인 하나아닌가? 화폐 제작처가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선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폐는 상품 가치 평가의 기준이고 척도이다. 매개물로서 유통과 보관, 축적의 수단 기능이 먼저다. 이면에 제작, 위조방지 등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며 제작처의 경제상황을 대변한다. 뿐이 아니다. 역사성, 정체성, 상징성, 예술성,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제작처의 총력이 동원되고,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고대에는 신화인물이나 지배자가 등장한다. 상징성 때문일까? 주 내용으로 해당지역 동식물이 동원되기도 한다. 동물로 범, 곰, 사자, 원숭이, 독수리, 백조, 고래, 거북이, 물고기 등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각종 고유문화재도 어김없이 디자인에 응용된다. 현재 사용되는 화폐에도 인물이 등장한다. 다른 점이라면 권력자 보다는 모범이나 표상이 될 인물이다. 유통되고 있는 화폐의 80% 이상이 인물 초상으로 도안되어있다 한다. 당연히 업적을 기리거나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다. 다른 이유는, 위변조 방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상화만 덜렁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초상과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 풍경이 그려진다. 디자인의 주 내용은 제작처의 문화자산이다. 따라서 내용으로 문화적 가치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화폐에도 다양한 내용이 등장하였다. 모두 살피기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의 인물만 살펴, 다시 한 번 귀감으로 삼고 기려보자. 늘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일상성 때문에 오히려 음미해보진 않았을 법하기 때문이다.

백 원 주화에는 이순신(李舜臣, 1545 ~ 1598) 장군이 등장한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조선 시대 명장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1576년 31세의 나이로 병과로 급제해 다양한 관직을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한산대첩 등 승리를 이끌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크고 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특히 명량대첩에서 13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왼쪽 가슴에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탁월한 인품과 유비무환, 임전무퇴 정신, 애국심을 본보기로 삼는다. 조선시대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은 장군이 아홉 명에 이르지만 오직 이순신만 떠올릴 정도로 우국충정이 높았다.

천 원 권 지폐 인물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을 심화 발전시킨 유학자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군수, 성균관 대사성 등으로 출사하여 국가 경영에도 참여하였으나, 무엇보다 학문에 정진하였다. 1560년 도산 서원을 지어 수양에 전념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주자학에 바탕을 두고 불교, 도교는 물론 모든 이단과 사설까지 공부하였다. 2000편이 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일본 주자학 성립과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퇴계학'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있다.

오천 원 권 인물은 율곡 이이(1536~1584)이다.

이황과 더불어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이다. 1548년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장원하였으며, 각종 과장에서 9번이나 장원 한 것으로 유명하다. 출사하여 중요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탁월한 정치 식견으로 수많은 보국정책을 제시했으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성학집요〉·〈격몽요결〉·〈소학집주개본〉·〈중용토석〉·〈경연일기〉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만 원 권 인물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 조선 제4대왕, 재위 1418 ~ 1450).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인재를 소중히 하고 인재 양성에 힘써, 조선의 금속활자와 인쇄술 완성 등 역사와 문화예술 정립, 서적 발간 등 다방면의 문화융성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천문관측기,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의 발명과 각종 화포의 개발 등으로 과학기술과 국방력도 놀랍게 신장시켰다. 6진 개척으로 국토도 확장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이룸은 물론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오만 원 권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율곡 이이의 어머니요, 시서화에 뛰어난 조선의 대표적 여성 예술가다. 높은 덕을 가진 현모양처로 우리나라 여성의 모범으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내조, 올곧은 자녀 교육, 진보적 정체성으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기계발에 힘써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시문과 <자리도>, <초충도>, <노안도> 등의 그림이 전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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