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션샤인스튜디오 전경. /논산시 홈페이지 |
"전쟁을 해보면 말입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어떤 여인도 어떤 포수도 지키고자 아등바등인 조선이니 빼앗길지언정 내어주진 마십시오" (유진이 조선의 정무대신에게 내뱉은 일침)
"글도 힘이 있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오 애국도, 매국도. 그대는 총포로 하시오. 내가 기록해주겠소" (희성이 전 약혼자인 애신에게 하는 말)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포스터 |
매회 주옥같은 명대사를 쏟아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들어다 놨다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2018년 tvN에서 방영된 '미스터션샤인'이다.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감독이 3번째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변요한, 김민정 등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았고 쟁쟁한 조연들이 뒤를 받쳐줬다.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소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지만 매회 코믹적 요소를 잘 버무려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100이면 100 정주행하게 하는 마력, 그 대열에 합류한 기자에게도 인생드라마가 됐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에서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이다. 이야기는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국 군함에 올라 태평양을 건너간 노비 소년 유진(이병헌)이 미군 장교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초반부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다섯명의 주인공, 후반부에 들어서며 각자의 자리에서 구국의 마음을 불태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애신(김태리)이 있다. 극중에서 애신은 조선의 정신적 지주 고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자 꼭 지켜내야 할 '조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션샤인스튜디오를 찾은 관광객들이 드라마 속 김태리와 이병헌이 연기한 애신과 유진의 첫 만남 을 재연하고 있다. 청춘을찍자 사진동호회 제공 |
▲어서 따라들 오시오, 1900년대 한성으로 말이오.
드라마는 충남 논산 션샤인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약 1만9834㎡(6000평)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부지에 근대식 건축물과 와가, 적산가옥, 초가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개화기 한성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논산시가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드라마 제작사 등이 공동투자해 조성한 곳으로 국내 최초 민관합작 드라마 테마파크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외형도 멋있지만 직접 안에 들어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어 더 좋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맨 먼저 '글로리 호텔'이 눈에 띤다. 사랑의 적수이자 벗이었던 유진과 희성(변요한)이 머물렀던 곳으로 작품의 메인 무대다. 극중에서 이 곳의 주인 쿠도 히나(김민정)가 그토록 저주하던 조국을 위해, 또 사랑을 위해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는 건물 전부가 폭파된 것으로 나오는데 다행히도 그 장면은 CG처리 된 것이라고 한다. 호텔 1층 영상관에서는 극중 명장면과 엔지장면이 소개되고 주인공들이 입었던 의상들도 전시돼있다. 유진과 희성의 객실이 있던 2층은 관람객들을 위한 카페로 꾸며져 있어 가배 한잔의 여유를 맛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애신의 방에서 한컷, 독립운동가가 되어 태극기를 만들며 또 한 컷, 션샤인스튜디오는 곳곳이 인생샷 명소다. /청춘을찍자 사진동호회 제공 |
고풍스러운 애신의 방에서 한컷, 독립운동가가 되어 태극기를 만들며 또 한 컷, 션샤인스튜디오는 곳곳이 인생샷 명소다. /청춘을찍자 사진동호회 제공 |
"애기씨" 진고개를 지날때면 협박인지 구애인지 모를 동매(유연석)의 목소리가 들리고, 블란서제빵소에 들어서면 팥빙수를 앞에 두고 순박하게 웃던 함안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유진과 애신이 수줍게 '러브'의 증표를 주고받던 한약방엔 아직도 바람개비가 걸려있다. 애국도 매국도 기록한 희성(변요한)의 신문사와 조선판 심부름센터 '해드리오'까지 발길 닿는 곳, 눈길 가는 곳 허투루 지나치기엔 왠지 미안하다.
시설을 한 바퀴 휙 하니 돌아보는 데는 성인 기준으로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스튜디오를 온전히 즐기려면 양품점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애신의 단아한 한복부터 쿠도 히나의 우아한 드레스까지 배우들이 입었던 의상들을 대여할 수 있다. 시설은 유료로 운영되며 오픈시간은 오전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매주 수요일은 휴무이니 꼭 확인하시라.
밀리터리체험관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논산시 홈페이지 |
션샤인스튜디오 바로 옆에는 대한민국 최고 병영테마파크인 밀리터리체험장과 6.25이후 폭격 맞은 시가지를 재현한 1950낭만스튜디오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이곳은 육군훈련소 각개전투장에 세워진 시설로 논산시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어 입장료는 무료이고, 서바이벌전투, 사격체험 등에 별도의 이용료가 있다.
밀리터리체험관은 헬멧 등 안전장구와 센서를 부착하고 실감나는 전투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바이벌 경기장과 VR체험관, 스크린 사격장 등이 마련돼 있다. 왕년에 총 한번 쏴 봤다는 성인 남성부터 특수부대 요원을 동경하는 젊은이들까지 찾는 이들이 많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담긴 1950낭만스튜디오. /논산시 홈페이지 |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담긴 1950낭만스튜디오. /논산시 홈페이지 |
실감나는 병영체험이 다 끝났다면 1950년 전후 한국으로 타임슬립할 차례다. 밀리터리체험장과 연결된 1950낭만스튜디오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다시 삶을 꾸려가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세트장 곳곳에 서려있다. 서민의 주린배 채워주고 마음을 위로해 줬던 국밥집,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사람들이 가득 찼던 극장, 반공 문구가 담긴 현수막과 담장옆 짐자전거까지 그 시대를 겪은 세대들에게는 진한 향수를,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생생한 역사체험장이 된다. 이곳도 시대극 촬영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 '열두번째 용의자'와 '유령',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 등 다수의 작품들이 이곳을 담아냈다. 한 걸음으로 세 가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논산 션샤인랜드, 올 가을 여행지로 강추한다.
황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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