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한다면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한다면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창화 교수

  • 승인 2021-09-02 10:21
  • 신문게재 2021-09-03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KakaoTalk_20201217_172555732
을지대 이창화 교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대화가 안 돼요.",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주장만 해요." 부부간의 갈등으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2019년도에 우리나라에서 23만 쌍의 부부가 이혼했으며, 이 중에서 성격 차이로 헤어진 비율이 43%였다고 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성격이 안 맞는 배우자와는 더 이상 살기 어려워서 헤어진 부부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성격의 차이라는 것은 서로의 가치관, 세계관, 도덕관 등이 달라서 같은 상황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대화하거나 어떤 결정을 할 때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가 내 마음을 잘 이해하게 만들고, 내가 반려자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을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렵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라는 책에서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성장한 환경,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고 말을 할 때 사자는 다른 사냥을 해서 날것으로 먹는 것을 생각할 것이지만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라는 말의 의미가 사자와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발달심리학에는 다양한 학설들이 있는데 모든 학설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심리발달과정에서는 삶의 초기, 즉, 생후 1세에서 2세 사이, 더 길게는 3세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성격이 형성되는 되는 데는 타고난 기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양육을 받았고, 다른 집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 세계관, 도덕관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비록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갖게 되며, 같은 말을 하더라고 그 말의 뜻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의 갈등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아내, 내 남편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이해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이 말했으면 조금은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여전히 억울해하고 서운해하고 분노를 표현한다.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의 고린도전서에는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라 여럿이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라는 말씀이 있다. 서로 다른 신체 부위지만 그 부위들이 있는 그대로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을 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온전히' 받아들임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와는 다른 내 배우자의 성격이 그 자체로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아내의 성격 바뀌기를 바라고 내 남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가 날 이해하도록 하거나, 내가 내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내, 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성격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내 아내, 내 남편과의 갈등은 사라지게 되고, 두 사람 간의 사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또 내 자신의 삶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될 것이다.

이창화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