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후배에게 들었던 푸념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한 것인데, 답변 내용이 필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했다. 사회에서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권력 및 기관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이다. 이 법의 개정으로 권력·감시 역할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이 크게 제기된다.
법 취지는 가짜 뉴스를 차단하고 뉴스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언론자유 침해 관련 심각한 문제점을 낳을 것이란 우려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국내 언론단체는 물론 해외 언론과 단체, 학계, 법조계에서 비판 의견이 거세다. 먼저 국내 언론단체의 경우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등 7개 단체는 지난 3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신문협회, 국제언론인협회, 국제기자연맹, 국경없는기자회 등 세계 주요 언론단체와 국내 언론단체, 야당·법조계·학계·시민단체 등이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한목소리로 반대했으나, 여당은 입법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입법 철회를 요구했다. 단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처리 할 경우 언론중재법 개정 무효화 위한 위헌심판소송에 나설 것을 밝히기도 했다. 입법 철회 요구와 함께 사회적 합의 기구 설립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현업단체들도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적 합의 기구야말로 민주당이 입법권력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마지막 기회"라며 "이 제안마저 저버린다면 가장 민주적인 권력에 의해 선출된 정부 여당이 가장 반민주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역사적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이것만 보더라도 국내 언론단체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걱정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비영리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도 한국기자협회에 보낸 성명에서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한 바 있다.
법 개정 추진 주체인 여당 내부에서도 강행처리 반대 목소리가 있다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전지역 국회의원인 이상민 의원을 비롯해 대선 주자인 박용진 의원, 김두관 의원 등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신중한 입장을 펴고 있다.
가짜 뉴스를 없애겠다고 하면서 허위·조작 보도 온상으로 지목된 1인 미디어나 유튜버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다. 언론중재법에는 기존 매체만 포함되어 반영할 수 없었다고 얘기하는 한 여당 의원의 말에 한숨이 나온다. 한마디로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강행 처리를 고수하던 여당이 9월 27일 법안 상정으로 8인 협의체를 만들어 여야 합의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인데, 적절한 합의와 보완이 있어야 한다.
언론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도 없지 않은 만큼 가장 합리적 방법은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 법안을 수정해 적절한 법 틀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고치고 고쳐 부실한 법을 만들 게 아니라 다시 처음부터 법 제정의 취지, 목적, 효과성 등에 충분한 분석과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의 숙의 과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강행 처리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셈이다.
필자도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고유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가짜 뉴스 근절과 언론 보도에 따른 피해 구제를 위한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언론단체들도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는 언론에 대한 개혁 논의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태구 경제사회교육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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