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비수도권 구분에 깔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고 싶다. 5천만에 이르는 인구, 1천억㎡가 넘는 국토가 딱 하나의 기준으로 이분된다는 사실 자체가 넌센스다. 그 기준이라는 게 어이없게도 단 한 사람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의 거주지(근무지)가 나머지 모든 국민을 둘로 쪼개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정도에 따라 누구는 수도권 시민이고, 누구는 비수도권 시민인 셈이다. 황당하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당연함이 되어 있다.
이 악습을 끊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명칭 자체에 불평등과 서열화가 내재돼 있고, 아무에게도, 어떤 지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의 빌미를 제공하고, 타지역민을 열등한 존재(가령 '촌놈')로 인식하게 한다. 비수도권 시민들에게는 불필요한 자격지심을 준다. 스스로를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주변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왜 비(非)라는 글자가 붙은 수식어로 내 지역이, 나아가 내 삶과 존재가 폄훼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별 불균형이 너무 심해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이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개발 규제나 비수도권 진흥 정책과 같은 명칭을 쓰는 것이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다.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에 가깝다. 수도권 대신 그냥 서울, 인천, 경기지역이라고 부르면 된다. 굳이 특성을 드러내야 한다면 인구과밀 지역, 신축 제한 필요 지역 등으로 지칭하면 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세계 지도를 펴놓고 나라 이름과 수도를 함께 외운다.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 몽골은 울란바토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표 선호와 서열화의 습성은 정비례한다. '한국의 1등 기업은 삼성'이라는 인식이 강할수록 2등은 어디지, 저 기업은 몇 등이래? 따지는 버릇이 공고해지는 법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각자가 가진 개성과 고유성이 평가받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
현상과 명칭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고, 꿩과 알의 순환논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고질적인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특정한 발화점이 있어야 하고, 명칭 변경과 같은 형식적인 변화가 단초가 되어야 한다. 균형발전이니 지방분권이니 하는 거창한 말까지 쓰고 싶지는 않다. 그냥 말부터 없애자. 방통위와 문체부는 각 언론사에 수도권-비수도권 이분 용어 자제를 권고하라. 법제처는 무려 법률명에까지 침투한 법(수도권정비계획법,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법)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라. 서울시와 경기도는 수도권지하철,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와 같은 명칭을 바꿔라. 그것이 우열을 넘어 모든 지역이 함께 흥하는 길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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