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변호사 |
20여 년이 되어 가는 오랜 영화가 새삼 다시 떠오른 이유는 문득 요즘 들어 자유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들과의 비교에서 점점 더 '그까짓 자유 따위'라는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강에서 의대생이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실체에 대한 국민적인 논란과 별개로 당시 이 사건은 한강공원에서의 음주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촉발하기도 했다. 내심 놀라웠던 것은 상당히 다수의 사람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시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 주기를 국가에 요청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낯익기도 하지만 익숙해지기에는 끝내 거부감이 든다.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방지할 필요성이나 타인의 음주로 인한 불편함 등의 가치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필요를 위해 도입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찾아볼 여유도 없이 우선적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의 소중함이 퇴색됐다는 의미는 아닐까.
'민식이법'이 통과됐을 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일종의 안도감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도로변을 걷다가 아이들의 손만 놓쳐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 법률로 안전장치를 강화해 준다면 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민식이법이 제공하는 안전장치의 방식은 논란을 끊이지 않게 한다. 민식이법의 요체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인데, 교통사고는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그 경중을 불문하고 사망의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고의적으로 범한 아동에 대한 강간 범죄보다 중한 형이 예정돼 있다.
물론 안전은 중요한 가치이며 특히나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안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민식이법의 수단은 매우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로 그 안전에 대한 대가로 큰 자유를 담보로 제공하길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마련해야 할 설비나 제도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히 수단을 검토하기보다 당장 자유에 관한 강력한 형벌을 수단으로 내세우는 방식에는 쉽게 동조하기 어렵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가함에 있어 과연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맞을까. 그 수단은 합리적이고 명확한 것인지 엄중한 검토가 이루어진 다음 입법을 진행하고 있을까.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의 제약이 일상생활이 됐다. 우리 국민은 전례없는 일상의 규제에 저항하기는커녕 협조를 다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의 백신 수급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회복하는 대가로 그다지 비싼 값을 지불할 의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자유의 제약이라는 사태가 그만큼 엄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더 무서운 일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주인공과 박탈된 자유에 길들어진 수감자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그려진다. 조금씩 침식되는 자유에 길들어지기는 더 쉬운 일이다. 공기처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유라고 하더라도 점점 희박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막히게 될지 모른다. 자유는 우리 스스로 소중하게 지켜야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이 쉽게 망각되지 않았으면 한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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