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사실 이 일상은 몇 달 전부터 시작됐다. 정년을 앞둔 필자가 어느 날 지나온 시간을 되새기다 보니 이제까지 곧잘 살아온 것도 그렇고, 무엇 하나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작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기에 크게 잘못되지 않고 문제도 해결하면서 나름의 성취도 경험하고 때로 기쁘고 때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준 것보다 받은 게 더 많다는 느낌이었다.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핸드폰에서 연락처에 들어있는 지인들의 생일을 매일 알려주고 있는 기능을 발견하였다. 옳다구나 싶어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문자만 쓰려다 보니 보험회사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커피 한잔이라도 선물하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또 일명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보내는 소소한 생일 축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생일 축하를 받은 이들은 이로 인해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다고들 한다. 하긴 누군가 자신의 탄생, 태어남을 기억하고 축하해준다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갖고 미소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커다란 선물을 챙겨주고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생일 축하라면 사람에 따라 즐거운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부담스러운 이벤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소소한 인사쯤이야 물 한 모금의 신선함 정도이리라.
생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직도 생생한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가, 함께 어울렸던 같은 반 친구 여덟 명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구성해주신 그룹이었던 것 같은데 약간 촌스러운 필자를 빼고는 모두 세련된 어린이들이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생일이면 그 아이 집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며 말하자면 생일파티를 했다.
나보다 조금 빠른 친구의 생일, 그 어머니는 작은 빵을 케익처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초를 꽂고 포장마차에서 냄비우동을 시켜 생일상을 차리셨다. 필자가 보기에는 다른 아이들 생일과 차별이 되는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날도 우리는 재미나게 놀고 헤어졌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필자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와 비교할 수 없이 나이 많으신 어머니가 막내둥이의 생일상을 어떻게 차려주실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한테 어떻게 차려달라고 드러내어 요구하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생일이 되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는 어머니 말씀에 대답하면서도 생일상이 촌스러우면 어쩌나 싶은 걱정뿐이었다.
왁자지껄 아이들과 함께 들어선 우리 집, 생일상은 소박하지만, 정성이 느껴졌다. 미역국은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반찬들과 그리고 몇 가지 과자를 예쁘게 담아주셨다. 친구들도 나이 많은 어머니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는지 좋아라 했다. 그 날 필자는 일기에 생일의 즐거움과 어머니께 전하고 픈 죄송함과 감사함을 썼던 것 같다.
생일은 마음껏 축하를 나누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심드렁하게 생일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지 말자. 가족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인사를 전하면 생일이 뭐 별거냐고 하지 말고 태어남에 대한 축하로, 살아감에 대한 응원으로, 그리고 되어감을 향한 격려로 기꺼이 받아들이자. 혹여 어색하걸랑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로 마음을 나누어도 좋겠다. 소소한 생일 축하가 퍼뜨릴 선한 파장을 기대하며 내일은 누구에게 인사를 보낼까 슬쩍 넘겨본다./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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