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1940년) 충북 괴산·증평 명창 최낭청 관련 기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조선창극사 47쪽을 보면 '최낭청'이라는 명창이 언급된다. '낭청'은 조선시대 벼슬이름으로서 소리를 잘해서 받은 것이다. 최낭청의 성은 최 씨지만 본명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성과 벼슬만으로 '최낭청'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이차영 괴산군수를 '이 군수'로 부르는 식이다.
최낭청의 출생지는 조선창극사에서 '충청도 청안'으로 기록돼 있다. 충청도 청안은 현재의 괴산군 청안면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괴산군 청안면은 당시 증평군과 같은 권역이었다.
청안면은 진천군과 약 2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최낭청과 진천 김봉학 판소리 명창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재명 국악학자는 "청안면은 진천군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김봉학 등 진천지역 판소리 명창들이 선배인 최낭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이 있다"고 말했다.
김봉학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전승이 끊어진 조선시대 판소리 무숙이타령 사설이 기록된 '게우사(戒友詞)' 희귀 문헌. 1890년 필사. 이 문헌에 '김졔철이 긔화요쵸'(김제철이 기화요초)라는 기록이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괴산·증평 명창인 최낭청은 판소리 기량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창극사'를 쓴 정노식은 최낭청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낭청은 학식과 기량을 모두 겸비한 어전광대였다. 최낭청은 학식이 높았고 소리 또한 뛰어나 임금 눈에 띄었다.'
노재명 학자는 "최낭청은 임금과 대면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학문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야만 어전 광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었고, 또 그에 걸맞은 활동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낭청은 임기응변하는 재기도 있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옛 명창들의 특징인 순간적인 작·편곡, 변화무쌍한 즉흥성이 강한 판소리를 구사했을 것"이라며 "이런 소리의 특징은 중고제 명창 이동백의 소리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악 학자들은 조선 전기 8명창 중 한명이자, '석화제(가야금병창제와 비슷한 창조)의 달인' 김제철 명창도 괴산군 태생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판소리 석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경쾌, 화사, 화평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석화제는 전라도 소리보다 충청권 소리에 더 근접하다는 게 노재명 국악학자의 설명이다. 노 국악학자는 "석화제는 순조~철종 무렵, 충청권 명창인 김제철과 신만엽이 처음 사용한 소리제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고(故)김영진(청주대 인문학 교수) 전 충북도 문화재위원장은 10여년 전에 김제철의 태생지를 '괴산군 인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위원장과 함께 인문학을 함께 공유해 온 이창식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인문예술대 학장) 교수는 "(김 교수는) 김제철 등 많은 판소리 명창이 충북에서 태어났다고 늘 이야기 했다"며 "충북지역 판소리 명창 등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고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국악(판소리)과 충북은 큰 연관성을 갖고 있다"며 "뜻을 함께한 인문학 교수들과 이런 점을 알리기 위해 학술세미나 등을 열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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