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묵 충남대 명예교수 |
기증품의 관리 및 활용 방안을 둘러싸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우선 기증품을 관리하고 활용할 기관의 명칭, 성격, 입지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술관 건축과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고 있다.
이 중에서 현재 가장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신설 미술관의 입지 문제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초에 관련 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가칭 '이건희 기증관'을 서울에 짓겠다고 발표했고, 구체적으로는 경복궁 인근 송현동 부지와 용산 중앙박물관 인근 부지 하나로 압축했다. 주무 부처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를 희망했던 지방의 반발은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 바깥의 지역에서는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지방에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수도권 내부의 다른 도시들도 기증자와의 연고를 내세워 그 지역에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정부의 입지 결정은 한마디로 '생각이 없는 결정'이다. 현재와 같은 수도권 집중 상태에서는 균형발전 기여를 입지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설정하지 않는 한, 신설기관이 무엇이든 간에 그 입지로 가장 유리한 지역은 서울 아니면 수도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처사이다. 지금까지의 집적과 집중이 새로운 집적과 집중을 가져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 셈이다.
이번 입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미술품을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이 필요하며 인력의 한계로 국립중앙도서관 등 다른 전문기관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증품이 서울에 있어야 여러 가지로 원활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씀이다. 미술관 운영에 있어서 다른 기관과의 협력과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런 기준만으로 신규 사업의 입지를 결정한다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건희 기증관은 어느 지방으로 가든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소장품의 규모와 격으로 보아 국내외로부터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에 충분하다. 미술관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전문가들은 외국의 사례로 흔히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 스페인의 빌바오를 든다.
코로나 19로 여행하기 어려운 요즘에는 해외 사례를 체험하기가 어렵다. 국내에도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미술관이 여러 곳에 있기 때문에 굳이 해외까지 갈 필요도 없다. 미술관이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도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전시된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담고 있는 건축물로서의 미술관과 그 환경이 발길을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요소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을 방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산속에 있는 미술관도 건축물의 디자인이 뛰어나고 좋은 프로그램을 곁들여 운영하면 자동차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방향을 선회하여 서울이 아닌 지방에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해 지역에 활력을 보태는 데 나서기를 기대한다. /박재묵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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