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결정 이후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데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제2의 베트남전에 견주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사태는 수많은 난민이 양산되고, 동맹국의 우려를 낳았다. 미군 철수 이후의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와 논란이 일고 있다.
남북의 대치 상황속에서 만들어져, 베트남전의 패망과 함께 폐기된 실미도 부대 사건이 올해로 딱 50년을 맞았다.
영화 '실미도'의 첫 시작은 무시무시한 조폭들의 범죄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북파 간첩 훈련을 받다 국가에 의해 버림을 받았지만, 그들이 막장 인생을 산 조폭들이라는 점을 장치해 두고 관객들에게 정서적 부채감을 덜어줬다.
막장 인생을 산 그들이었으니 어차피 살아도 감옥에 가거나 사형 선고를 당했을 그들이니 그들의 희생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는 심리적 위안은 여전히 실미도를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로 남게한 당위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들이 흉악한 범죄인이 아니라 평범한 시골 청년들이었다면 어떨까?
국가란 이름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것이 맞는 것일까?
실미도 사건 50주년을 맞아 실미도 부대원이 돼 죽음을 맞이한 옥천 출신 7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미도로 떠난 7인의 옥천 청년들'(고운광순 지음, 모시는사람들 펴냄, 256쪽)과 실미도의 탄생적 배경과 실미도 사건, 그리고 사건의 처리 과정을 그린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안김정애 지음, 모시는사람들, 288쪽)이 나란히 출간됐다.
옥천 청년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유린당하고 은폐당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의 존립 이유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면, 아이히만들은 실미도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공권력의 폭력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실미도원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사회의 부랑아가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다면 어떨까? 장미빛 미래를 약속받고 지원한 그곳에서 지옥같은 훈련을 견뎠지만 결국 국가에 의해 버림받고 철저히 존재자체가 지워졌다면? '실모도로 떠난 7인의 옥천 청년들'은 제목처럼 옥천출신 청년 7명이 부대원 모집책의 거짓 선전에 속아 실미도 부대원이 됐다가 결국 비극적으로 희생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옥천에 귀촌한 후 실미도 사건 중 7명이 옥천 청년이었고, 흔히 알고 있던 '흉앙범이나 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농촌청년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
그래서 책은 지옥같은 실미도의 훈련과정 대신 옥천 출신 청년 7명의 성장과정을 시작으로 실미도 부대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 그리고 국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희생당하고 은폐된 과정을 통해 '국가'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무시된 개개인의 삶과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한 개인의 삶의 무게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결코 무시되거나 짓밟을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은 개인에 대한 국가 폭력의 보고서이다.
여기에 베트남전을 비롯해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한 미국에 대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옥천 청년들의 슬픈 희생에서 머물지 않고, 한반도의 분단,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되풀이되는 약소국의 비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전쟁고아, 무연고자가 주를 이뤘던 구성원은 모집 마감이 임박해지면서 평범한 옥천청년 7명까지 추가로 배치됐지만, 미국의 닉슨정권이 베트남에서 손을 떼자, 부대 창설 목적과 임무는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실미도를 구성하고 폐기하고, 그들의 존재를 철저히 은폐한 이들은 '국가'라는 대의 명분아래 '안보'와 '통일'을 내세워 실미도를 만들고 폐기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대 담론아래에서 희생당한 개인에게 촛점을 맞춰보자. 권력의 힘이 커질수록 이를 견제할 수단은 없어지고, 결국 권력은 괴물이 된다. 개개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권력으로 개개인의 삶을 핍박한다면 국가의 권력은 그래도 정당성이 부여돼야 할까?.
그래서 저자는 국가의 폭력성을 나치대학살을 자행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과 동일 선상으로 보고, 책의 이름도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이라고 지었다.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 하는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결정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정의 잘못에 대해 시인하고, 국가와 국민 개개인의 삶, 어디에 무게를 두는 가는 정책권자의 의지에 달렸다.
저자는 "국가는 진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포기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강조한다.
오희룡 기자 huily@
*'올랑올랑'은 가슴이 설레서 두근거린다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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