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18일 중도일보 신문에서 중·원동 일대 성매매 기록 찾아
밤의 요화로 표현된 여성들, 오백원 포주와 중개비로 착취 관행 확인
나라의 광복 맞은지 15년, 요화들에게는 언제 햇빛이 비칠까 탄식도
중도일보 1960년 9월 18일 3면에는 밤에만 피는 ‘요화’(妖花)에 대한 단상이 기사화됐다. 여기서 요화는 사람을 홀릴 만큼 요염한 여자를 가리키는데, 이는 당시에도 존재했던 성매매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1960년은 일제 해방 후 1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전 동구 중동과 원동을 중심으로 밤길을 유혹하는 요화들이 즐비했음을 보여준다.
기사의 첫 문장은 '하숙가세요'다. 1960년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남북전쟁 이후 경부선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대전으로 모였다. 이때 막차를 놓치면 대전역 인근에서 하숙 개념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는 숙박과 성매매가 결합 된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하숙가세요', '하숙하세요'는 결국 성매매를 권유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던 셈이다.
밤의 요화들과 손님. 1960년 9월 18일 중도일보 신문. |
기자는 요화를 따라가면 ‘인육시장’의 노예가 된다며 비판했다. 인신매매와 공창제가 불법임에도 여전히 성매매가 이뤄지는 사회를 한탄하고 있다는 의미다. 1960년 무렵 성매매는 오백 원이었나 보다. 그나마 온전히 요화들에게 가는 수입이 아닌데, 포주와 중개비로 착취된다고 했다. 이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제도라는 점에서 공창제의 잔재임을 보여주기도 하고, 성매매가 착취형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해방은 15년 전 되었건만 요화들에게는 언제 햇빛이 비칠 것인가.' 기자는 진심으로 어지러운 세태를 반성하며 성매매가 일반화된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1960년에서 2021년.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세상은 성매매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요화들의 해방을 바랐던 1960년 시절의 중도일보 기자와 집결지 폐쇄를 기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1960년 9월 18일 중도일보 신문 지면 모습. |
"하숙가세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밤의 요화가 중·원동을 중심으로해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밤에만 피는 꽃인 모양이다. 때로는 ○○의 소매까지 부여잡고 싫지 않은(?) 생떼도 쓰며 억지 청춘○도 비저 내는 이곳! 요화를 따라가면 갖은 음탕한 짓을 하기 마련인 인육시장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인육시장은 옛날 왜인들에 노해 만들어진 청루의 유물로서 오늘까지 잔재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 되었다. 남여의 평등이 법제화했다. 인신의 매매는 물○금지되고 공창제가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연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존치되고 있는 사회의 역류인 것이니 개명만 되었을 뿐 무엇이 다르겠느냐 말이다.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밤의 꽃으로 불리우는 이 사○○○의 현지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살기 궁해 배움이 없어... 의지할 곳 없이... 가지 가지 사녹필유곡체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몸부림치는 오늘의 지존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있을까 보냐? 순간의 향락의 화대란 것이 오백 원이라면 그 ○○마저 그 몸의 수입이 못 된다고 한다. 오할은 포주 그리고 또 중개비니 하는 착취가 있다고 하니 이보다 인신을 천시하는 사상이 또 어데 있느냐 말이다. 억메인 노예! 제 몸과 제 마음을 구속저당 하고 촌보의 자유마저 없이 식충인○ 끼니를 이어가든 이들 요화에게 언제 햇빛이 비칠 것이냐. 이럭저럭 일대의 쇠사슬에서 해방된 지는 일오성○이 흘렀고 또 이 정권도 무너진 새 역사를 창조한 오늘도 그들은 세상을 저주하고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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