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어초문답도'로 듣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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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어초문답도'로 듣는 세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8-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가 살면서 즐기는 취미활동은 퍽 다양하다. 스스로 즐기는 것이 취미라 한다면 굳이 구분 지을 필요도 없겠다. 마음의 문제이니 말이다. 일과 취미가 같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아무리 즐거워도, 일이 되면 부담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일도 막상 당사자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생업이 스포츠가 되고 스포츠가 다시 생업이 되기도 한다. 낚시도 그중 하나이다. 고대에 생계수단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 고기를 잡아 파는 어업과 달리, 낚시는 즐기는 대상, 취미활동으로 점차 발전한다. 크게 번창하여 꽤 인기 있고 보편화 된 스포츠이기도 하다.

한 번에 낚을 수 있는 고기 수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식업, 어업에 종사하려면 허가와 면허권이 필요하다. 무차별적인 남획으로부터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자연물 채취 시, 훗날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요한 양만 취하고 보호하여야 한다. 욕심은 금물이다. "공자는 낚시로 고기를 낚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으며, 주살질 하되 잠자는 새는 쏘지 않았다. (子釣而不網, ?不射宿.)"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남획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의로 허도 찌르지 않았다. 즐거움 얻는 것이 목표였으면, 그것만 취하면 된다.

낚시의 대명사는 아무래도 강태공이다. 심지어 낚시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강태공은 중국 위나라 때 위수(渭水)에 낚싯대 드리우고 때를 기다렸던 강여상(姜呂尙)을 말한다. 태공망이라고도 불렀다. 천하가 비탄에 빠진 난세를 걱정하고, 천리를 탐구하며 호연지기를 즐겼다 한다. 문무왕의 스승이 되어 천하통일을 이룬다.



엄자릉(嚴光, 자 子陵, BC 37 ∼ AD 43)이 회자 되기도 한다.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와 어려서 함께 뛰놀며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다. 친구가 왕에 오르자 모습을 감췄다. 영리를 잽싸게 쫓는 세태와는 정반대다. 수없이 궁중으로 불러들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한 번 입궐하였으나 며칠 광무제와 노는 것으로 끝냈다. 모든 영욕을 뒤로하고 몸을 숨겼다. 부춘산으로 들어가 밭 갈고 낚시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친구에게 부담되지 않기 위해 세속의 명리를 완전히 등졌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은둔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은둔한 경우는 흔치 않다. 고아한 풍모와 변함없는 절개 탓에 후학의 귀감이 된다. 은자의 표상이다.

낚시는 고기잡이가 전부는 아니다. 수차례 밤샘 낚시를 해본 일이 있으나, 취미가 낚시인 사람에게 어찌 견주랴? 나름대로 느낌은 있었던 기억이다. 사색에 빠져든다. 문득 붙잡은 화두에 몰입되기도 한다. 강물에 묻고 강물로부터 듣던 싯다르타가 되기도 한다. 광활한 원기, 공명정대한 용기, 자유롭고 유쾌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자연과 동화된다. 우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세상 대소사가 밝아진다. 낚시꾼이 가졌을 법한 고상한 생각이 상상되기도 한다. 고기잡이에 뜻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잊고자 하였다(取適非取魚)는 말이 이해되기도 한다. 취적비취어는 어떤 행동 목적이 보이는 것과 달리, 다른 데 있다는 말로 발전하기도 했다.

ㅗㅗㅗ
이명욱, 17세기, 종이에 담채. 세로 173.2㎝ × 가로 94.3㎝.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는 어부와 나무꾼이 강가에서 우연히 만나 우주와 세계 질서에 대해 문답하는 그림이다. 어부와 나무꾼은 강과 산, 자연에 묻혀 산다. 지자와 인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치와 인물, 천리를 논하고 청담(淸談)을 즐기기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비극적인 시인 굴원(BC 343 ~ BC 278)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굴원은 회왕의 두터운 신임으로 대신들의 질투와 모함을 받는다. 끝내 강남으로 유배되어 동정호에 도착한다. 이때 <어부사(漁父詞)>를 지었다. 하늘도 땅도 그 누구도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다. 강가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굴원에게, 어부가 초나라의 삼려대부를 지낸 사람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굴원은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술에 취했는데 나 홀로 취하지 않아 이렇게 되었소."라며 탄식한다. 끝내 세상에 동화되지 못한다. 초나라의 끝없는 쇠락으로, 피폐해진 조국 산천에 절망하여 돌을 품고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진다.

역리에 밝았던 소옹(邵雍, 1011-1077)의 '어초문대(漁樵問對)'나 소식(蘇軾, 1036 ~ 1101)의 '어초한화록(漁樵閑話錄)'도 담겨있다. 어초문대는 어부와 나무꾼이 강가에서 만나 우주와 세계 질서를 문답으로 풀어가는 형식이라 한다.

보이는 것은, 갈대가 무성히 우거진 사잇길에서 나무꾼과 어부가 대화하는 모습이다. 나무꾼은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장대를 메고 있다. 어부는 낚싯대 메고, 물고기 꾸러미를 들고 있다. 표정이며 몸짓이 퍽 자연스럽다. 평화롭고 여유롭다. 섬세하고 정밀한 필치도 다가온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살 부는 바람도 느껴진다.

어초문답도에는 도가사상, 은일사상 등 상기한 내용 외에도 무한한 심상과 철학이 담겨있다. 혹, 그러한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는가? 중국은 물론 우리 고사인물도에서 사랑받는 화제의 하나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명국, 이인상, 정선, 홍득구 등의 그림이 전하며, 근대화가 지운영, 이한복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림은 조선 숙종때 화원 이명욱(李明郁, 생몰미상)의 유일한 유작이다. 대화 내용이 무엇일까? 음미하고 상상해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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