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면서부터 인간중심체계를 유보하는 경우가 발생해 성숙한 분별력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돈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라는 선택의 자리에 인간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다 선한 사회를 세우기 위해 나는 돈보다 인간을 먼저 선택합니다." 또는 "빠르게 완전한 사회를 세우기 위해 나는 인간보다는 돈을 지금은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라는 이유를 갖고 있습니까? 인간을 선택하는 이상은 좋지만 현실에서는 돈을 선택한다는 이류를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된 한국사회가 아닙니까? 아직도 한국사회는 인간보다 돈을 먼저 선택하는 익숙한 방식을 고수할 것입니까?
지금까지 우리 공동체는 결코 체계적이지 않고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조상과 선배들의 체계적인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보다 선한 사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상과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부정하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체계적이고 조직화되었지만 비인간적이라면 사람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불합리를 넘어서는 효율적이면서 불합리한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인간적인 공동체를 인간은 선호합니다. 이를 자세히 보면 지속할 유산이 있어서 인간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그 유산이 새로운 이상사회를 가지 못하게 하는 감옥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유산의 토대가 빈약해 이상의 기반이 되지 못해 이상이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저질의 균형은 필요하지 않고 고질의 균형을 요청하는 인간들이지만 우리에게 떨어지는 결과는 늘 저질의 균형론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작은 공동체에서 드러나는 고질의 균형을 세워야 보다 나은 한국사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젊어서는 성격을 판단함으로 사람을 이해하였다면 성숙해지면서는 환대하는 정도에 따라서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젊어서는 내 마음에 드는 정도에 따라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정해졌다면 성숙해지면서는 모두의 선을 위한 정도에 따라 호불호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것은 인간의 보편성과 환대입니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자기애로부터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진장한 힘이 들어가야만 달성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환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닫힌 마음문을 열어야만 가능할 일입니다.
마음문을 닫아걸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문을 열고 사는 선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마음문을 열고 사는 사람을 보면 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처럼 기쁜 나머지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환대는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로 일치시키기에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환대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 다른 것은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존중을 해야만 합니다.
세상보다 더 선한 사회를 세우려는 교회는 서로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천국을 보이는 곳입니다. 한국교회가 모두를 위한 보편성을 담는 그릇이기를 바랍니다. 유낙준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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