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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향으로 군침을 돌게 하는 복숭아는 옛 중국에서 영적인 과일로 대접받았다. 도교 사상이 강한 중국인에게 '무릉도원'은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연유되는데 거기에 복숭아나무가 나온다. 물고기를 잡던 어부가 어느 날 길을 잃고 헤매다 낙원에 들어간다는 얘기. 전쟁도 없고 고통도 없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그 곳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는 별천지. 그런데 어부가 들어갔던 선계(仙界)엔 복사꽃이 만발했다지 않은가. 달콤한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하고 분홍의 꽃잎은 바람결에 하늘하늘 날리고 말이지. 속세의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별천지와 복사꽃. 그 곳 사람들도 여름이면 흘러내리는 복숭아 과즙을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었으려나?
복숭아는 생김새와 성질상의 이유로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수밀도의 네 가슴'. 이육사의 시 '나의 침실로'에 나온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미혼의 남자 선생님이 수밀도를 설명하면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밀도는 살과 물이 많고 맛이 단 복숭아의 한 종류다. 선생과 학생들은 수밀도와 마돈나의 가슴을 매치시킨 시인의 시적 메타포에 대해 불온한 상상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복숭아의 보송송한 솜털은 또 어떤가. 과일 중에서 오직 복숭아만 갖고 있는 솜털. 그런데 이 솜털은 알레르기를 유발해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복숭아가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이 박 사장네 집에 들어갈 때 걸림돌인 문광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기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손에 든 복숭아를 입으로 후우 불자 허공에 날리는 솜털이 은가루처럼 반짝인다. 영화에서 복숭아의 활약은 가히 스펙터클했다.
어릴 적 내 고향 집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야트막한 흙담 옆의 키가 훌쩍 큰 토종 복숭아나무였다. 먹을 게 흔하지 않던 시절, 복숭아는 우리 식구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다란 장대로 발그스름한 복숭아를 따 먹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먹어야 했다. 한 입 우적 씹다 꼬물거리는 벌레를 뱉어내는 게 다반사였다. 복숭아는 조그맣고 볼품없었지만 새콤달콤하면서 향이 진했다. 어느 핸가 엄마는 좋은 것만 골라서 양철 함지박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 장에 내다 팔았다. 하지만 엄마 손에 쥐어진 돈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엄마는 헐값에 팔고 싶지 않았지만 그걸 다시 이고 온다는 게 엄두가 안 나 그냥 팔고 왔다. 그 복숭아나무는 몇 년 후 늙고 병들어 베어졌다. 더위도 한풀 꺾였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먹는 푹 익은 복숭아는 더 달고 맛있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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