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 승인 2021-08-25 14:26
  • 신문게재 2021-08-26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송전교수
송 전(한남대 명예교수)
선거의 계절이다. 인터넷 신문만 펼치면 여론조사 결과가 사람들의 정서와 이성을 쥐어짜는 듯하다. 많은 후보자의 심경은 얼마나 복잡하고, 설레고, 짜증 나고, 어이없어할까? 누가 대통령에 적합한가? 등 극히 단순한 질문으로 지지도를 계산한다. 넘 우습지 않은가? 그러나 그게 대중의 의식을 지배한다. 엄격하고 객관적인 검증과 밀도 있는 토론을 통해 실력 있고 국격에 어울리는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여러 면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을 기대해 본다.

지난 18일은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12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를 길게 보면 광복 후 100년의 역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대통령 두 사람은 박정희와 김대중이 아닐까 싶다. 독재자로서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문제가 많았던 산업화를 밀어붙여 가난한 백성이 적어도 굶주리지 않게 했던 공을 세우고 산업화를 이룩한 박정희. 그와 평생 대척점에 서 있었던 김대중.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뜨겁게 박정희와 맞붙은 그는 우여곡절 끝에 27년 만에 대통령에 올랐다. 한국의 민주화는 그의 삶을 통해 모양과 색깔을 지니며 점진적으로 구현되었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남겨 놓은 많은 정치·사회·경제적 모순들의 폭발이었던 IMF 사태를 해결하며 그 방안으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IT 혁명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온 세계는 그의 삶의 투쟁에 고개를 숙였고, 전 세계인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한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문화 감수성이 매우 강한 대통령이었다. 전라도 외딴섬 하의도 출신인 그의 부친은 음악 재능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판소리 실력이 뛰어났었다고 한다. 춤도 능했고, 그의 '쑥대머리'는 일품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부친 덕분에 대통령 자신도 판소리에 추임새를 넣을 수 있고, 꽹과리, 장구, 북을 흉내 내는 정도라도 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1990년대 초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기성세대가 싫어했던 한류의 원조 서태지의 음악성을 예리하게 감지한 정치인이었다. 서태지의 '하여가'의 밑바탕에 서린 판소리의 미세한 구절을 감지하며 그 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한 그는 대중음악의 정치적 사회적 함의와 영향력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했다.



신세대 문화에 대한 감수성으로 K-Pop의 물꼬를 텄던 그는 한국민의 문화 DNA가 일본문화를 너끈히 압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대중문화 유입을 허용했다. 그 결과는 우려와는 정반대로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아마 하늘에서 BTS의 성공을 보며 그럼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칠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분야에서의 그의 공헌도 지나칠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 짓눌렸던 한국 영화계는 그가 통상압력 속에서도 스크린쿼터제를 고수하고,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 보장과 영화계에 대한 물질적 지원 정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 상징물이 영화 '쉬리'였다. 남북분단체제의 타부를 깨뜨리며 한국영화사상 가장 많은 650만 관객을 불러들인 이 영화 이후 1000만 관객 영화가 나래비를 섰다. '기생충'은 이런 발전의 결정이었다.

21세기에는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휘어잡으리라는 그의 예언이 그의 사후에 실현되고 있는 양상을 보노라면 그의 문화적 선견지명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의 대업을 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서로의 약점을 캐물으며 자신을 내세우기에 바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듯이, 문화 감수성이 뛰어난 잘 준비된 이가 대통령이 되어 품격 있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가 해당할까. 더 좀 지켜봐야 할 터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