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말말말, 말의 품격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말말말, 말의 품격

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 승인 2021-08-24 08:40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김용태 무역협회 대전세종본부장
김용태 본부장
우리 집 책장을 보니 새삼 '말하기'에 관한 책들이 많다. 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더 나아지기 위해 한 권씩 사다 보니 얼추 10권쯤 됐다. 대통령의 말하기, 이기는 대화, 사람을 움직이는 말, 멋지게 한말씀, FBI 행동의 심리학, 협상의 10계명, 어른답게 말합니다 등 독서충동을 일으키는 제목들이 많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말을 둘러싼 논쟁이 워낙 많이 일면서 평소에 눈길이 덜 갔던 말을 주제로 한 책들에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는 올여름에 뜨거운 '말 폭탄'을 경험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경쟁자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 '훈련되지 않은 돌고래' 등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는 사실과 어긋난 내용의 언급과 '부정식품' 등의 실언, '저거와 정리'를 둘러싼 진실 게임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설화(舌禍) 수준의 말들이 쏟아지자 국민의 불쾌지수는 연일 상승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게 다가 아니다. 자신의 측근을 채용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직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한국마사회장에겐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졌고, 주시애틀 총영사는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외교부 본부 조사를 받고 있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외교관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 임기 도중에 귀국 명령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2013년 5월 당시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부장으로 필자와 업무상 만남에서 은퇴 후 경북 안동에 정착하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말 관련 논란은 사적 영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튜브, 팝캐스트 등에서는 혐오성 저질 발언들이 넘쳐난다. 또 충남 논산의 모 중국집 사장이 폭언과 함께 주방용 칼로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때려 갑질 파문이 일었고,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는 "생활환경 관리원(경비원)에게 폭언과 욕설은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실언과 막말이 쏟아지고 있는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의 언어 중추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 탓이 아닐까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19에 걸려 치료받고 재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낙마 원인 중 하나는 그의 거짓말과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말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비정상적 열기를 가라앉히고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위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말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 말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만큼 말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생각, 감정을 말과 글로 나타내는 방식을 연구하는 수사학이 문법, 논리학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평가 기준으로 삼았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신체,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말하는데 ‘언’은 말이 분명하고 반듯해야 함을 뜻한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지식을 익히기 전에 먼저 수신(修身), 언어 예절, 공경 교육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예절을 배웠다.

전직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역임했던 강원국 작가의 지적대로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뱉은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일상 대화, 사업상 상담에서 별 의도 없이 한 말, 사소한 말버릇 때문에 더는 가깝게 지내기 싫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성공의 문턱에서 넘어질 수도 있다.

불교에서 유래한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자기 발밑을 살핀다는 의미로 이는 본래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뜻이다. 발밑과 함께 혀밑도 살펴 말하기 전 3초 만이라도 생각해보고 격에 맞춰 말한다면 세상은 한결 평온할 텐데./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