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본부장 |
우리는 올여름에 뜨거운 '말 폭탄'을 경험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경쟁자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 '훈련되지 않은 돌고래' 등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는 사실과 어긋난 내용의 언급과 '부정식품' 등의 실언, '저거와 정리'를 둘러싼 진실 게임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설화(舌禍) 수준의 말들이 쏟아지자 국민의 불쾌지수는 연일 상승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게 다가 아니다. 자신의 측근을 채용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직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한국마사회장에겐 직무정지 결정이 내려졌고, 주시애틀 총영사는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외교부 본부 조사를 받고 있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외교관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 임기 도중에 귀국 명령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2013년 5월 당시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부장으로 필자와 업무상 만남에서 은퇴 후 경북 안동에 정착하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말 관련 논란은 사적 영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튜브, 팝캐스트 등에서는 혐오성 저질 발언들이 넘쳐난다. 또 충남 논산의 모 중국집 사장이 폭언과 함께 주방용 칼로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때려 갑질 파문이 일었고,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는 "생활환경 관리원(경비원)에게 폭언과 욕설은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실언과 막말이 쏟아지고 있는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의 언어 중추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 탓이 아닐까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19에 걸려 치료받고 재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낙마 원인 중 하나는 그의 거짓말과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말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비정상적 열기를 가라앉히고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위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말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 말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만큼 말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생각, 감정을 말과 글로 나타내는 방식을 연구하는 수사학이 문법, 논리학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평가 기준으로 삼았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신체,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말하는데 ‘언’은 말이 분명하고 반듯해야 함을 뜻한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지식을 익히기 전에 먼저 수신(修身), 언어 예절, 공경 교육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예절을 배웠다.
전직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역임했던 강원국 작가의 지적대로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뱉은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일상 대화, 사업상 상담에서 별 의도 없이 한 말, 사소한 말버릇 때문에 더는 가깝게 지내기 싫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성공의 문턱에서 넘어질 수도 있다.
불교에서 유래한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자기 발밑을 살핀다는 의미로 이는 본래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뜻이다. 발밑과 함께 혀밑도 살펴 말하기 전 3초 만이라도 생각해보고 격에 맞춰 말한다면 세상은 한결 평온할 텐데./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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