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백래쉬는 발전의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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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백래쉬는 발전의 반증

김명주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승인 2021-08-23 08:31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명주 충남대 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지난 8월 20일 대전에서도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규탄 시위가 열렸다. "여성 혐오를 파는 혐오경제를 퇴출하라"는 전국 릴레이 여섯 번째 규탄 시위가 대전에서도 열린 것이다. 상당수의 유튜브와 아프리카TV가 여성 혐오발언을 통해 돈을 번다. 혐오 발언의 선정성과 공격성이 높으면 조회 수가 올라가고, 조회 수 만큼 돈을 버는 수익모델이다. 이른바 이런 '혐오경제'는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실제 강간 및 살해와 같은 참혹한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 그래서 '해일'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혐오경제’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촉구했다.

페미니즘 백래쉬는 수잔 팔루디가 쓴 1991년 책 『백래쉬』에서 1980년대 미국의 퇴행 현상을 기술하면서 널리 유명해진 말이다. 1960~70년대 영미권에서는 페미니즘의 제2 물결이 휘몰아쳤다. 가히 혁명이었다. 여성은 더는 주눅 들지 않았고 당당하게 인간/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런데 80년대 레이건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선회 되어 여성의식과 정책이 후진했다. 임신 중단을 결정한 가난한 여성에게 의료지원이 금지되고, 여성의 권리나 복지를 지원했던 정부 프로그램과 기구를 없애거나 예산을 삭감했다. 노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는데, 정부는 남녀 동일임금은 페미니스트들의 턱없는 요구라고 무시했다. 곳곳마다 만연했던 성희롱 성폭력은 조롱거리가 되거나, 그 파괴적 행위의 사실성은 쉽게 의심되었다. 이런 사회적 퇴행 현상을 담고 있는 팔루디의 책은 출판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 출판되고 있다. 백래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활발하면 할수록, 발목 잡는 백래쉬는 초조함 때문에 갈수록 거칠고 포악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 운동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대중적으로 확산했다. 한 여성의 비극적 죽음이 극적 인식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공감만큼이나 반발도 극심해졌다. 그러니까 좋게 보면 페미니즘 백래쉬는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행복한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팔루디는 이렇게 말했었다. "반 페미니즘 백래쉬는… 여성들이 완전히 동등해질 가능성이 예전보다 증가했기 때문에 생긴다. 백래쉬는 여성이 평등을 성취하는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 여성들을 멈추려는 선제공격이다"고 말한다.

뭘 하든 반발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여성 인권 옹호가 30%, 백래쉬 반발이 30%일 때,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대략 '30%'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임계점의 비율이다. 일명 '티핑 포인트'라고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그래서 현재의 갈등은 극도로 첨예하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긴 시간이 지나면, 중간 40%를 포함한 다수의 집단지성은 발전적 방향을 선택할 것이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인권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다. 물론 그냥 거저 되지는 않는다. 혐오경제의 규제를 촉구하며 릴레이 시위를 여는 여성들을 비롯하여 무심한 안락을 포기하고 다수의 뜻을 결집하는 이들의 수고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더불어, 백래쉬 저항에 성공하려면 '혐오'의 심층을 들여다봐야 한다. 혐오를 주조로 하는 페미니즘 백래쉬의 심층은 시간을 거슬러 멀찌감치 또 깊숙이 보아야 보인다. 여성 혐오는 단순히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긴 역사적 배경과 깊고 고질적인 심리적 배경이 있다. 인간은 동물성과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것들, 고체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액체성, 타액, 체액, 피를 혐오하는 성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이를 여성에게 투사했고,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비체화'시켰다. 혐오의 심층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백래쉬와의 전면전에서 이길 수 있다. 지면 관계상 혐오의 심층은 다음 글에서 다룬다. /김명주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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