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현실'은 시인이 되려고, 시를 써서 문학상 공모에 내려 합니다. 다섯 편 중 마지막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해 끙끙대다가 방문을 나섭니다. 산에도 갔다가, 카페에도 갔다가, 술을 마시러 가기도 합니다. 한 사람도 미리 약속하지 않았건만 그녀는 뜻하지 않게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해묵은 애증에 넌덜머리도 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들을 그들에게 읽어줍니다.
영화 위로 보이스오버되는 시들은 황인찬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와 영화가 곧장 연결되지는 않지만, 시는 시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흘러가면서 그래도 어느 순간 깊은 공감의 영역이 생겨납니다. 영화를 채우는 시와 삶. 시는 우아하고 심오하지만 삶은 구태의연하고 구질구질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시가 삶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멋지고 근사한 의미와 이미지만을 즐기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치 필요 없는 것들을 뚝뚝 끊어서 생략도 하고, 도약도 하면서 압축된 것만 남기는 시처럼. 삶은 시 같지 않아서 없어도 될 것 같은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영화는 주인공 현실의 시간을 통해 그러한 삶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시와 삶 중간쯤에 영화가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삶을 담지만 편집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영화도 지루한 하루의 이야기지만 러닝타임이 80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시간과 생략된 시간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한여름의 녹음과 폭풍처럼 열정으로 가득한 청춘이건만 지루한 일상의 반복과 불투명한 미래에 허덕이는 주인공 현실이 마침내 다섯 편의 시를 완성하듯 의미와 상징, 이미지라는 것도 결국 이어지고 이어지는 삶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곧 가을이 옵니다. 지치고 지루했던 여름이지만 그 안받침으로 하여 소슬하고 빛나는 삶의 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 아닐까요? 이 여름도 분투하는 청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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