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지원장 |
'병원에서 태어나 사는 내내 의료를 소비하다 병원에서 죽는다.'라는 표현도 있듯이 우리는 의료소비가 미덕인 세상에 살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OECD, 2020년), 우리나라 의료비는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6.2%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국민 1인당 의료기관 방문도 세계 최다(17.2회) 수준으로 OECD 평균(6.8회)의 2.5배나 된다. 약품비도 연 20조를 넘겼고 사용량도 최고 수준이다. 노인 중 87%가 하루에 약을 6종 이상 복용하고, 11종 이상도 45%나 된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 100명 중 70명은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OECD 평균이 30명 채 안 되는 걸 보면 건강염려증은 한국인에게 가장 많다
의료소비량은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등 인구·사회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4명 중 3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 덕분에 의사도, 환자도 부담이 덜하다.
의료이용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지불 방식과도 관련이 깊다. 진료 받은 행위, 의약품, 치료재료의 의료서비스 하나하나마다 가격을 매겨 지불하는 '행위별수가제(FFS, fee-for-services)'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료량이 병원 수입과 직결되니 의료비 증가는 불가피하다.
민간병원이 90%가 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의료기관들 사이의 경쟁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병원조차 진료수입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어 진료량 경쟁을 부추긴다. 한국의료윤리학회(2015년)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의료서비스 증가는 단지 비용부담뿐만 아니라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도 있다. 건강검진 옵션인 고가 영상검사로 해로운 방사선에 노출되기도 하고, 학계에서도 논쟁이 됐던 과잉진단에 의한 수술과 이후 평생 약 복용도 감내해야 한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 의료진들의 헌신과 미담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 하지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과잉진료를 마주할 때면 '병원은 우리의 건강을 얼마나 걱정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목표로 역대 최고 재정투입(5년간 30조 6000억)을 진행 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정책 방향에 따라 진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비급여(보험 미적용) 영역을 줄여나가고 있다. 행위별수가제를 대체할 수 있는 '묶음 방식의 지불제도' 확대 노력과 함께 큰 병원보다 일차의료기관(동네의원)을 먼저 이용하도록 제도적 기반도 늘려가고 있다. 의료의 질과 비용을 함께 살피는 심사평가 체계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정부제도나 규제방식의 의료비 관리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국민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습관, 긍정적인 사고, 스트레스 줄이기 등 자발적 행동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24개 지역에서 연 34만 명이 참여하는 '건강생활실천지원금제' 시범사업을 지난달 개시했다. 걷기 등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충청권은 대전 대덕구와 충북 충주시, 충남 청양군(부여군 포함)이 참여한다. 시범사업 3년 후, 모든 국민이 동참하는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의학박사 크리스티안구트는 '오늘날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든 것이 아니라 늙는 것'이라 했다. 신체기능이 쇠해지는 노화와 질병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퇴근 후 도심 속 '한밭수목원'을 자주 찾는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일상의 피로를 달래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다. 우리 동네 주변에 나만의 휴식 코스를 만들어보자. 하루 30분 이상 걸으면서 그날 좋았던 기억들을 되새겨보자. 나이가 오학년 중턱이 되니 '심신 건강' 만큼 좋은 인생 계급장이 따로 없다. /공진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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