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당시 맨 처음 지어진 건물
기와지붕과 서양식 건축양식
기독교 정신 고스란히 담겨
모든 것엔 역사와 문화가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 나라의 문화 등 어디에나 있다. 이는 대학에도 존재한다. 대학이 살아온 시간을 보고 대학만의 고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대학생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학 건물에도 스토리가 있고, 목적이 있다. 이 공간들은 대학생의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의미가 있다. 대학에서 의미를 담은 공간들은 향후 대학생들에게 대학에 대한 귀감을 줄 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대전과 충남지역 대학만의 발자취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남대 인돈기념관 |
한남대 인돈기념관 앞에 심어진 미국산딸나무. 기독교 정신을 깊이 느낄 수 있다. |
설계는 남장로교 장로이며 건축가인 데이비스(Charles S.Davis)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물 양식과 재료들을 조사한 뒤 설계를 완성한다. 인돈기념관은 1956년 5월 착공해 1957년 9월 30일 준공됐다. 당초에는 T자형 건물이었는데 추가로 전관이 건립되면서 항공사진을 촬영하면 기와지붕의 문양이 영문자로 'H' 형태다. 지붕의 문양이 'HANNAM'의 첫 글자로 본관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됐다. 전관과 후관 사이에는 동쪽공간에는 인돈동산, 서쪽 공간은 중정뜰로 정원이 조성돼있어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인돈기념관 벽면에는 붉은색 벽돌로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다. |
검은돌과 흰돌로 만들어진 인돈기념관 내부 계단 |
그러한 정성은 현관 입구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같은 크기와 모양의 검은 돌과 흰 돌이 현관 바닥에 깔려 있는데 이 돌은 주변에서 주워서 일일이 박아놓았다고 한다. 이곳 2층에 오르면 통창으로 탁 트인 한남대 캠퍼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인돈 기념관이라는 명칭은 한남대학의 초대총장인 인돈 박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현재 인돈 기념관은 이사장실, 총장실, 대학원과 본부 행정부서 사무실 등이 배치돼 있어 본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한남대 관계자는 "인돈기념관은 신앙과 학문의 가장 조화로운 관계를 단순하면서도 절묘하게 표현한 건축양식으로 한남대의 지역사회 역할을 건축물로 표현한 함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돈기념관 정원에 세워진 인돈 박사 동상 |
●설립위원장 및 초대총장 인돈(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21세의 나이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48년간 충청과 호남에서 선교와 교육 사업에 헌신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3.1운동과 한국의 처참한 실정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으며,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조선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지속했으며, 6.25전쟁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피신했지만, 린튼과 그의 아내는 한국에 머물며 구호와 선교활동을 이어갔다. 말기 암투병중에도 한남대의 전신인 대전대학을 설립하고 4년 후 소천했다. 지난 2010년 故윌리엄 린튼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