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배우지 않는가? 온고지신이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 되는 것이 가하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지신이라 할 때는 옛 것을 익히고 그로 미루어 새것을 안다, 해석하기도 한다.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히 깨달음이 오기 때문이다. 옛 것과 새것, 한쪽에만 치우치면 지식의 폭이나 깊이가 작아질 수 있다. 조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아무래도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흔히 운동을 배울 때 기본자세를 중히 여긴다. 기본이 돼 있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 ~ 1895)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것을 만나는 자는 과거의 흔적에 얽매는 흠이 있다. 새것을 만든다는 자는 규칙을 지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진실로 옛것을 잘 알면서도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아야 한다(法古者 病泥跡, 創新者 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온고지신과 상통하면서도 창신에 방점이 있는 듯하다. 무엇인가 익히는 것은 새로워지기 위함이요, 늘 변화해야 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예술가의 첫 번째 덕목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이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특히 서예가는 법고창신에 열정을 다하고 중히 여기는 것으로 안다. 명필의 일대기를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회자되는 것이 법고창신이다. 수많은 명작의 임서를 통해 옛 법을 익힌다. 법으로 시작해서 법으로 나온다.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가? 더구나 보는 것으로 필법, 묵법, 장법, 기운 등을 알아내고 터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사(師事) 하는 이유다. 깨우친 후에 그의 장점을 모아 자신만의 작품을 창출한다. 작품에 임해서도 알아야 하고 익혀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사연이 담겨있기에 명작은 볼 때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예뿐이겠는가? 여느 예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존중돼야 하는 이유다.
창작뿐이 아니다. 감상도 절차탁마해야 한다. 기본은 물론, 이치나 필력,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 심미안을 키워야 더 심오하고 고상한 세계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예술뿐이랴, 우리네 삶 자체가 그러하다. 모든 몸짓이 창작 활동이요, 자아실현이다. 그러함에도 다른 사람이 쌓아온 세계, 세상을 업신여기기 일쑤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야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바람 한 점 그저, 거저 이는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살면서 일어나는 대부분 난관, 불행이 거기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삶뿐이겠는가? 국가경영, 대소사가 다르지 않다. 선거 역시 역사를 창작하는 일이다.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 만약 세상이 가볍게 보인다면 스스로 가벼움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줄 알면서 명품이 되려 하지 않는다. 만들지 않는다. 이제 만들고 가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선별하기도 쉽지 않다. 거기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