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웅 국장 |
전통 시대에는 조금 다른 이유로 조경에 소홀(?)했다. 전통 조경은 차경(借景), 즉 경치[景]를 빌려[借]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도시화가 이뤄지지 않은, 잠시 눈만 돌려도 자연이 보이는 그런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굳이 수목을 식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 나무(木)를 심으면 빈곤(困)해진다는 속설 때문에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자라는 나무를 심을 경우 나무뿌리가 건물의 기초를 훼손시킬 수도 있고, 웃자란 나무가 집안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로막기도 하며, 낙엽이 지붕에 쌓이면 기와에서 누수가 발생하는 등 건물에 해를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내에 나무 심는 것을 삼갔다고 한다. 울타리 안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근대식 정원이 도입되면서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다.
이런 저어함에도 불구하고 건축문화재들을 둘러보면 문화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고목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춘당의 소나무를 들 수 있다. 담장 밖에서, 마치 동춘당을 향해 손을 뻗치듯 살짝 기울어진 이 나무를 빼놓는다면 동춘당의 경관은 지금과 매우 달라질 것이다. 인접한 곳에 위치한 소대헌·호연재는 봄이면 앞마당을 가득 채우며 붉게 피어오르는 영산홍 때문에 연중 많은 상춘객의 사진 배경이 되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남간정사의 앞에는 당장 바닥에 누워도 이상치 않을 버드나무가 그 기이함을 뽐내고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크기는 작지만 '우암이 직접 심었다'는 묵직한 스토리를 몸에 지닌 배롱나무가 점잔을 빼고 있다.
또 유회당 뒤 언덕의 단정한 반송이나 창계숭절사 앞마당에 우뚝 선 은행나무는 제향공간이 가지는 성격을 잘 대변해주는 듯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으며, 옥류각과 봉소루 및 광명정(유회당 종가)은 나무 때문에 그 옆에 건축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아름드리 보호수들이 나란하다. 수운교 입구와 이사동 묘역의 소나무 군락은 그 자체로도 말을 덧붙일 필요 없는 빼어남을 자랑한다.
이처럼 건축문화재에 '매우 그럴듯한' 나무들이 있었음에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다. 문화재와 함께, 아니 어떤 경우에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왔을 터인데, 문화재 가치의 평가가 건물과 관련 인물 등에 집중되다 보니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왔음에도 여전히 부대조경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법무부는 현행 민법에서 물건으로 분류되었던 '동물'에게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민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인간 외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 없던 만물의 영장이 만물의 구성원 중에 하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첫걸음에 성원을 보낸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주역은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의 삶에 반려해왔던 동물들이었다.
인간에게 반려동물이 있다면 건축문화재에는 여러 고목(古木)들이 각각의 나이만큼 반려해왔다. 그들에게도 제대로 된 평가와 그에 따른 적절한 지위를 부여할 이유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대전시는 오는 2022년부터 문화재 주변의 주요 반려수목들에 대한 생육환경조사와 보존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한 장기적인 관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건축문화재에 남겨진 수목이 지금처럼 자랄 것을 기대하며 심어졌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건축문화재 역시 당대의 사람들이 나중에 문화재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짓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남겨진 결과 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수목이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어느덧 처서가 지났다. 지금쯤 여경암에는 고요한 산사를 붉게 물들이며 백일홍이 만발하고 있을 것이다. /손철웅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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