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이유는 바로 자화상 때문이었다. 미술사가들은 예술가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자화상을 그린 최초의 화가로 뒤러를 꼽는데 주저 않았다.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전인 중세이래로 화가라는 신분은 신발을 만드는 수공업자에 불과했다. 예술가라기보다는 화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뒤러는 화가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달랐고 자신의 자의식을 자화상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자화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뒤러는 자화상을 회화의 새로운 한 영역으로 개척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자화상은 물론 화가의 신분상승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큰 그림의 한쪽구석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예술가는 뒤러 이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자화상을 독자적인 분야로 확립한 최초의 화가는 뒤러였다. 열세 살 때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평생 여러 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걸작은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29세 생일을 맞이하기 바로 전에 그린 것으로 화려한 모피코트 차림을 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더구나 얼굴은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이는 그 당시 예수그리스도나 왕에게만 허용되는 초상화법이다. 사소한 배경까지도 생략한 어두운 화면은 눈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한 눈빛과 화가의 옷차림, 긴 곱슬머리 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이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자 부와 명성을 소유한 귀족의 모습으로 각인시키는 효과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왼쪽 배경에는 1500년이라는 제작년도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첫 글자를 A와 D를 조합하여 만든 사인을, 오른쪽에는 라틴어로 '알브레히트 뒤러, 노리쿰 사람, 28세에 원래의 혈색 그대로 나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글을 남겼다. 원래 혈색그대로 라는 의미는 색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뒤러 본인이 마침내 그 색을 정복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뒤러는 이 자화상에서 이미 500여 년 전 28살의 나이에 '나는 예수다' '나는 왕이다' 등 예수 그리스도나 왕에게만 허용되었던 자기 선언을 한 것으로 당당해진 화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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