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수 |
황폐해진 독일의 영토에서 1712년에 태어난 프리드리히 2세는 대표적인 계몽주의 군주로 알려져 있다. 28세에 왕이 된 프리드리히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고 봉사하는 군주의 역할을 강조하였지만, 이를 바탕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게 되면서 프로이센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1748년까지 치러진 7년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끌어올린 프리드리히는 대왕으로 불렸지만, 프로이센 군대의 잔혹한 운영은 군국주의의 전형이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모델이 되었다. 이 시기에 지루한 전쟁 때문에 재정이 바닥난 프랑스는 식민지 쟁탈전에서 패배하고 미국에서도 영국에 패하게 되고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한다.
지중해에 있는 코르시카섬은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 영토였다가 1768년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이 섬에서 1769년에 태어난 나폴레옹은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16세에 포병 소위로 임관하고,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4개월 만에 장군으로 진급하였다. 무자비한 살상과 정치권력 싸움 속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세워진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35세에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다. 스페인과 독일을 점령하고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그는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6년간의 생활을 보내다가 51세의 나이로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나폴레옹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제복에 손을 넣은 이유가 위궤양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동생들까지 위암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로 보아도 가족력이 있음이 추측된다.
그의 철학인 능력주의, 법치주의, 시민 평등사상을 유럽에 퍼트렸고, 나폴레옹 법전 등과 같은 업적을 남겼지만, 언론을 통제하고 자신의 치적을 능숙하게 미화하였다. 이집트와 이탈리아 원정길에는 고고학자들을 동행시켜 예술품들을 약탈하여 지금의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영국이 빼앗아가 대영제국 박물관으로 흘러들어 가기도 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조직을 동원하기도 했으며 훈장제도를 만들어 지지세력으로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영웅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행한 일들을 보면 장기집권 독재자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국민의힘 대표로 36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선출되었다. 국민이 그에게 바라는 신선함과 젊음을 통해 정치와 권력이 변화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낸, 아니 그의 영향력이 만들어낸 정치의 변화가 가져올 의미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본격적인 검증과정이 시작되겠지만, 그가 생각하고 말하는 '공정'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궁금해진다. 대표직을 수행하며 많은 경험을 겪을 것이고 행위의 변화를 나타내겠지만, 생존을 위해 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소위 ‘전업정치[옹]’들이 보여주는 억지와 기만과 같은 구태 행위를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벌써 병역 의혹에 대한 잡음이 들린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인체의 여러 장기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은 상호작용이 강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호르몬 분비의 조절은 과도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균형을 만들어 낸다. 젊음은 숫자로 보이는 나이보다 호르몬의 적절한 균형이 더 중요한 것이다. 리더에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소신과 철학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한 비전 행위에 가해지는 다양한 비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 균형 잡힌 정치를 해야 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실수를 인정하고 뼛속까지 반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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