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목마름과 단비, '운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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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목마름과 단비, '운룡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8-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운종용(雲從龍) 풍종호(風從虎)라 용이 가는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이 가니 금일송군(今日送君) 나도 가요

천리에 님 이별하고 주야상사(晝夜想思)로 잠 못 이뤄



경기민요 노랫가락 한수다. 노랫가락은 변형된 시조곡조로 시조시를 연주하는 것이다. 반대로 노랫가락이 시조의 원형이란 주장도 있다. '노래'는 시조시를 뜻하는 것으로, 시조로서 부르는 가락이란 뜻이다. 이창배(李昌培)는 '한국가창대계(韓國歌唱大系)'에서 무려 1백절이 있다고 하였으나, 어떤 평시조도 가락에 맞춰 부르는데 무리가 없다. 따라서 창작 시조도 많이 불린다. 누가 더 운치 있고 감동적인 시로 부르느냐가 판을 좌우한다. 5.8.8.5.5의 변박이 특징이며 멋이다. 첫 박을 3박으로 하거나 5박을 6박으로 하는 등 실제는 퍽 다양하게 불린다.



'운종용 풍종호'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 백이열전에 나오는 글귀다. 백이와 숙제 이야기는 익히 알 것이다. 인의를 실천하는 깨끗한 인품으로 선하고 충성스러웠으나 굶어죽었다. 도척은 포악하고 사나워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 천수를 누렸다. 착한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 하였는데, 결과는 영 딴판이다. 이른바 하늘의 도리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무리는 서로 구한다.(同明相照, 同類相求)"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그와 같이 "성인이 만들어지면 세상 만물도 드러난다.(聖人作而萬物覩)" 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인이었으나, 공자의 칭송으로 명성이 더욱 창성하게 되었다. 안연(顔淵) 또한 공자의 칭찬으로 후세에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너무 짧게 요약하여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문이다. 당장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요, 선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덕행의 철학적 의미, 자연의 순리를 사랑가에 인용하였다. 참 기발한 발상이다. 연인이 곁을 떠나는 모양이다. 구름이 용 따르고 호랑이가 바람 따르듯 따라간단다. 그만 놓쳐버렸을까? 밤낮 잊지 못해 잠 못 이룬다. 이보다 더 아프고 깊은 상사지정(相思之情)이 어디 있으랴.

'운종용(雲從龍) 풍종호(風從虎)라 용이 가는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이 가니' 한자말을 먼저하고 뜻풀이를 한다. 민요 가사에 흔히 등장하는 점층, 열거, 대조, 반복의 강조법이다. 무대예술에서 눈과 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를 해소해주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용과 호랑이는 우리 민속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문(大門)은 집안과 외부가 소통하는 통로이다. 잡귀는 막아내고 상서로운 것은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문배(門排)이다. 처용문배(處容門排)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 그림을 문에 붙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그림이 등장한다. 가장 많이 남아 전해지는 것이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이다. 호랑이는 삼재를 쫓는(虎逐三災) 액막이(?邪)요, 용은 오복을 가져오는(龍輸五福) 상서로운 전달자다. 새해가 되면 대문에 용 그림과 호랑이 그림을 붙였다. 그림이 어려우면 '龍'자와 '虎'자 글씨를 써서 붙였다. 지금도 더러 눈에 띈다.

운룡도
나옹 이정 작, 운룡도(雲龍圖), 비단에 수묵, 116 × 75.5cm, 쿄토, 고려미술관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고대부터 동서양에 공히 등장한다. 상상의 동물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짐승들의 특장점만 모아서 만들어졌다. 전체적 형상인 뱀은 비늘 가진 동물 중에 으뜸이다. 낙타 머리에 사슴뿔과 박산, 토끼 눈, 메기수염, 쇠귀, 영주 갈기, 뱀의 목덜미, 조개 배, 잉어비늘, 매 발톱, 호랑이 주먹에서 따왔다. 여의주를 들고 있거나 물고 있기도 하다. 국가의 수호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상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비의 신이자 풍파를 다스리는 신으로 풍년과 풍어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제왕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민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따라서 각종 미술, 장식, 공예 등 예술품과 생활도구에 무시로 등장한다.

사신도를 비롯하여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며, 조선시대엔 기우제(祈雨祭)와 관련 빈번하게 그려진다. 화룡기우(畵龍祈雨)다. 용을 그려 비를 기원한다. 구름을 몰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 받아들인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그려봤을 듯하다. 과거의 작가들도 많이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글로만 전하기도 하나, 남아있는 그림도 다수다. 지난 6월에 소개했던 나옹 이정(懶翁 李楨, 1578~1607)도 꽤나 인상적인 '운룡도(雲龍圖, 비단에 수묵, 116 × 75.5cm, 쿄토, 고려미술관)'를 남겼다. 물에 잠겼던 용이 힘차게 솟구친다. 섬광을 번뜩이며 치솟는 용의 역동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췄던 듯하다. 독특한 필치로 그 느낌을 잘 살렸다.

잠룡과 현룡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세상을 들썩인다. 항룡유회(亢龍有悔)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몸 낮춘 겸허한 용이 목마른 자에게 단비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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