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兎(토끼 토) 死(죽을 사) 狗(개 구) 烹(삶을 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사기 월세가(史記 越世家)와 중국의 역사[한국출판공사]에 보인다.
비유로서는 필요할 때 이용하다가 소용이 없어지면 버리는 것을 비유한다.
우리는 통상 토사구팽(兎死狗烹)하면 한신(韓信)이 참형을 당하면서 탄식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유래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와 월(越)나라 때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회계지치(會稽之恥)등 많은 사건들이 전개되었던 때 오나라와 월나라는 인접 국가이면서도 서로 침략찬탈(侵略簒奪)과 권모술수(權謀術數) 난립이 빈번하여 늘 원수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오(吳)나라 왕(吳王) 합려(闔閭)가 월(越)나라와 전쟁 중 발가락에 상처를 입고 갑자기 한(恨)을 품으며 죽자 그의 손자인 부차(夫差)는 나뭇단 위에 눞는[臥薪/와신]자세로 월나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오나라는 월나라를 전격 침략하였다. 한편 월왕 구천(句踐)은 끝까지 싸웠으나 준비된 오나라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패(大敗)하여 항복 조건으로 구천은 왕비(구천의 부인)와 함께 부차(夫差)의 노예가 되어 갖은 고초와 수모를 견디어내었다. 그리고 드디어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온 후에 쓸개를 맛[嘗膽/상담]을 보면서 역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10여 년이 지난 후 구천은 마침내 오나라를 쳐서 멸망(滅亡)시킨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월나라 상장군(上將軍) 범려(范?)와 재상 문종(文種)이었다. 범려는 20여 년 동안 구천을 보필하면서 그를 패자(覇者)로 만들었고, 그 공로로 그는 상장군이 되었지만, 구천의 성품을 꿰뚫어 보고 모든 권력과 욕심을 내려놓고 구천에게 작별을 고한 뒤 제(齊)나라로 갔다. 제나라에 간 범려는 자신과 절친했던 월나라의 충신(忠臣)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썼다. 그 내용 가운데 "하늘에 새가 다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蜚鳥盡良弓藏/비조진양궁장),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으며(狡兎死走狗烹/교토사주구팽) 적국이 망하면 모사는 죽는 법(敵國破謀臣亡)이오. 게다가 월왕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상(像)이요. 그대는 어째서 그를 떠나지 않는 것이오?" 문종은 편지를 본 후 병을 칭하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으나 떠나지는 않았다.
얼마 후 간신들은 "문종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참소했고, 월왕이 문종의 권력을 경계하며 비수(匕首)를 주며 자결을 강요했고, 결국 문종은 그 칼로 자결하고 말았다.
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한(漢)나라 대장군 한신(韓信)이 참형 당하기 전 자신을 자책하며 한탄한 말로 더 유명해졌다.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楚?王)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를 차지한 데는 한신(韓信)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은 바가 컸다. 항우를 멸한 후, 유방은 용병의 천재이며 많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한신의 군사를 빼앗고 초왕(楚王)으로 봉했다. 그런데도 유방은 늘 한신의 존재가 두려웠고, 죽일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유방이 제일 미워했던 종리매(種離昧/항우의 유명한 장군)가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평소 여러 차례 괴롭힘과 수모를 당해 그를 증오하고 있었던 유방은 초나라[한신]에 칙명을 보내 종리매를 잡아 압송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한신은 차마 친구를 사지에 보낼 수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한신이 종리매와 더불어 모반을 꾀한다고 유방에게 모함하였다. 천하명장인 한신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 유방은 종리매를 핑계로 한신을 제거하기 위한 계책을 진행했다.
한편 여러 낌새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한신은, 어떤 한 사람이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알현하라고 했고, 한신은 종리매와 이 일을 상의했다. 종리매는 "유방이 한신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당신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나를 잡아 자진해서 한나라에 잘 보이려고 한다면 내가 오늘 죽으면 당신도 곧 뒤따라 망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 후 한신은 고민이 깊어졌고 드디어 종리매를 죽일 결심을 하자 이를 눈치 챈 종리매는 한신에게 "당신은 장자(長者)가 아니오"라고 꾸짖으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한신은 유방에게 종리매의 목을 바쳤지만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간신히 죽음만 면한 채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 후 한신은 진희와 더불어 모반을 꾀하다가, 유방의 부인 여후와 소하의 계략에 넘어가 체포되어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토사구팽'의 사례에 비유하여 한탄하며 참수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인간은 자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자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는 무자비한 방법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역사의 모든 현장에서 권력자들은 그러했고 역모(逆謀)의 죄는 심지어 구족(九族)까지 멸(滅)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
명태조(明太祖/주원장)의 무자비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조선의 태종(이방원)도 권력에 도전할만 자는 누구도 제거함을 서슴지 않았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의 덫에 걸려들면 그 권력 외에는 아무 것도 구별 할 수 없는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주위의 조언도 진정한 충언도 자기의 생각만 옳게 느껴져 멸망의 구렁텅이로 직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현자(賢者)는 충고한다.
勇略震主者身危(용략진주자신위) 功蓋天下者不賞(공개천하자불상) 곧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임금을 두렵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이 커서 천하를 덮을만한 자는 상(賞)을 주지 않는다.
결국 용맹과 지략이 군주보다 뛰어나고 공로가 큰 자는 제거됨을 이른다.
지구촌 지금의 국가 지도자들도 몇몇은 자기 멸망이 눈앞에 닥쳐 있는데도 모르고 권력욕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장 상 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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