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안 디지털팀 차장 |
내가 대전과 충남도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모를릴 없을 것이오. 1958년 공설운동장추진위원회(위원장 서병균)가 꾸려져 충남 대전에 종합운동장을 만들자는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도 아실 것이오. 줄곧 서울에서 열리던 전국체전이 1957년 부산에서 개최된 것에 자극받아 중도(中都) 대전에 종합운동장을 만들어 우리도 전국체전을 치뤄보자는 뜻도 있었던 것으로 아오. 전쟁 후 헐벗은 도시에서 아이들이 쓰레기따위를 주우며 넝마주이를 방치할 게 아니라 마음껏 달리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자는 뜻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오. 내가 정말 고마워하는 것은 충남도민과 대전시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납부해 1959년 3000만 환이라는 돈이 나를 위해 정말로 모았졌다는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60여년 전에 대전시 인구 19만명에 불과하던 때, 판잣집에서 비바람만 간신히 모면하던 삶의 시민들이 공설운동장을 짓겠다고 보리쌀 한줌 내어주는 풍경을 말이오.
1970년대 대전공설운동장 모습. 종합운동장과 야구장, 충무체육관이 보인다. (사진=대전시 제공) |
어제오늘 나를 찾아오는 체육인들 입에서 올림픽 소식이 전해져 모처럼 웃으며 지내고 있소. 높이뛰기 우상혁이 어느새 25살 청년이되어 도쿄올림픽스타디움에서 날아올랐다고 하더이다. 11살 상혁이가 영원한 은사 윤종형 선생님을 처음 만나 테스트를 받았던 곳이 내가 있는 곳이었고, 마라토너 이봉주를 비롯해 셀 수 없는 체육인재들이 내 품에서 자랐잖소. 대전시민들이 나를 만들어줬으니, 나는 시민들의 결정을 숙명으로 알고 따를 것이오. 다만, 상혁이처럼 꿈을 쫓는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시민들이 함께 느끼는 곳은 반드시 있어야하지 않겠소. 바로 옆에 1971년 충무체육관을 세울 때 좋은 문장을 써놓았더이다. 작별 인사를 대신해 그 글을 인용해보겠소. "겨레의 영원한 젊음을 가꾸려는 나라의 뜻과 도민의 정성으로 이 전당을 세우노니 젊은 세대여! 충무공의 거룩한 뜻을 본받아 저마다 슬기로운 겨레의 횃불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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