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나는 한밭종합운동장 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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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는 한밭종합운동장 이로소이다

  • 승인 2021-08-02 23:44
  • 신문게재 2021-08-03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임병안11
임병안 디지털팀 차장
나는 한밭종합운동장 이로소이다. 요즘 행정하는 사람들이 나를 철거하고 전용야구장으로 만들 계획은 착착 진행 중인데, 나를 새롭게 건축할 계획은 미궁이라는 소식을 들었소. 대전시민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친구로 오랫동안 함께할 줄 알았는데 자뭇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소. 요즘보니 나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는 디지털아카이빙에 나섰다던데 철거를 결정해놓고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겠다니 앞뒤가 바뀐 감이 없지 않소. 그러나 그네들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내 입으로 내 생애를 말해보겠소.

내가 대전과 충남도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모를릴 없을 것이오. 1958년 공설운동장추진위원회(위원장 서병균)가 꾸려져 충남 대전에 종합운동장을 만들자는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도 아실 것이오. 줄곧 서울에서 열리던 전국체전이 1957년 부산에서 개최된 것에 자극받아 중도(中都) 대전에 종합운동장을 만들어 우리도 전국체전을 치뤄보자는 뜻도 있었던 것으로 아오. 전쟁 후 헐벗은 도시에서 아이들이 쓰레기따위를 주우며 넝마주이를 방치할 게 아니라 마음껏 달리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자는 뜻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오. 내가 정말 고마워하는 것은 충남도민과 대전시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납부해 1959년 3000만 환이라는 돈이 나를 위해 정말로 모았졌다는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60여년 전에 대전시 인구 19만명에 불과하던 때, 판잣집에서 비바람만 간신히 모면하던 삶의 시민들이 공설운동장을 짓겠다고 보리쌀 한줌 내어주는 풍경을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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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전공설운동장 모습. 종합운동장과 야구장, 충무체육관이 보인다.  (사진=대전시 제공)
나도 사실은 친구가 여럿 있었소. 1958년 지어진 대전역사(驛舍)는 1945년 광복 후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지은 최초의 근대식 역사(驛舍)이었음에도 2003년 새 역사를 짓는다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소. 6.25를 기억하고자 1957년 6월 25일 공사비 6250만환으로 착공해 이듬해 8월 15일 준공해 일본제국주의보다 훌륭한 우리기술을 뽐냈던 기억도 지금은 사라지지 않았소? 옛 충남도청 뒤에 있던 영렬탑도 충남도민들의 성금 1000만 환으로 1956년 완성했는데 대전에서 행정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철거하지 않았소? 국가나 지자체 예산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도민들이 성금으로 만든 기념물을 한 때의 행정가가 시설을 절멸시킨다는 게 온당한 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소. 내가 예전처럼 선거 때마다 대대적인 유세현장으로 쓰였다면 지금처럼 철거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생각해보는 중이오.

어제오늘 나를 찾아오는 체육인들 입에서 올림픽 소식이 전해져 모처럼 웃으며 지내고 있소. 높이뛰기 우상혁이 어느새 25살 청년이되어 도쿄올림픽스타디움에서 날아올랐다고 하더이다. 11살 상혁이가 영원한 은사 윤종형 선생님을 처음 만나 테스트를 받았던 곳이 내가 있는 곳이었고, 마라토너 이봉주를 비롯해 셀 수 없는 체육인재들이 내 품에서 자랐잖소. 대전시민들이 나를 만들어줬으니, 나는 시민들의 결정을 숙명으로 알고 따를 것이오. 다만, 상혁이처럼 꿈을 쫓는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시민들이 함께 느끼는 곳은 반드시 있어야하지 않겠소. 바로 옆에 1971년 충무체육관을 세울 때 좋은 문장을 써놓았더이다. 작별 인사를 대신해 그 글을 인용해보겠소. "겨레의 영원한 젊음을 가꾸려는 나라의 뜻과 도민의 정성으로 이 전당을 세우노니 젊은 세대여! 충무공의 거룩한 뜻을 본받아 저마다 슬기로운 겨레의 횃불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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