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Y-zone 부근, 이틀간 쓰레기 줍깅 체험
경치 아름답지만, 실상은 곳곳에 쓰레기천국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실상은 달랐다' 대전의 3대 하천, 그중에서도 물줄기가 갈라지는 Y-zone 부근을 걸으며 온갖 쓰레기를 줍다 보니 자연스럽게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올랐다. 찰리 채플린은 희극과 비극으로 인생에 비유했지만, 3대 하천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오후 4시에도 35도에 달하는 뙤약볕 아래서 이틀 동안 하천 부근 쓰레기 줍기에 나설 생각을 하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 걷기를 좋아해 걷기와 쓰레기를 줍는 이른바 '줍깅(줍기+조깅)'을 기획했지만, 사실 두려움이 앞섰다. 대전 도심을 가로지르는 유등천을 맡았을 때, 남들과는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단순히 걷기보다 하천의 매력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서 유등천의 테마는 체험으로 정했다.
유등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삼천교 부근의 모습 신가람 기자 shin9692@ |
"물을 꼭 챙기라"라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물 한 통, 쓰레기봉투, 집게까지 준비물을 전부 챙겨 나섰다. 첫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유등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Y존’을 선택했다. 어디 구역까지 기준을 정할지 고민하다 유등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구역의 1㎞ 이내인 용문교, 한밭대교(유등천 방향), 한남대교(대전천 방향)까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다.
유등천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날씨는 34도를 가리키니 할 말도 없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면 투덜대기라도 했겠지만, 온전히 본인이 하겠다고 했으니 억울함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쓰레기가 하나도 없어 줍깅을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하나둘 쓰레기를 모은 봉투를 보니 다행스럽게도(?) 기사를 완성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땡볕 아래 무더위도 불쾌하지 않았다. 가끔 날씨가 좋을 때마다 하천 곳곳에 있는 갈대숲 사이로 바람을 느끼면 도심에 이런 하천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쓰레기를 주운 지 30분을 넘어가자 벌써 20ℓ 쓰레기봉투는 절반이 찼다. 음료 페트병부터 조경 작업으로 인한 스티로폼, 심지어 목장갑까지 하천 주변 쓰레기는 그 종류도 다양했다.
(위) 하천의 인근 다리 밑에서 누군가 술을 마시고 그대로 방치해둔 모습 (아래) 용문교 아래 하천 근처에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조심스럽게 쓰레기를 하나둘 치우다 보니 근처 벤치에서 쉬고 있던 어르신께서 말을 걸어왔다. "이런 거 보면 세상살이가 답이 없어. 산책로에 쓰레기통을 두면 어떤 사람들은 집안 쓰레기를 가져와 버리고, 또 그렇다고 지금처럼 쓰레기통을 치우면 이런 사태가 발생해버리니…."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탄 내 모습을 보더니 안쓰러운 마음이 드셨는지 가방에서 간식 몇 개를 꺼내주시기도 했다.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첫 번째 Y-zone 부근에서 약 7000보 넘게 걸으면서 쓰레기를 주웠더니 20ℓ짜리 봉투 하나를 꽉 채웠다.
산책하면서 둔산대교를 지나 도심에서도 즐길 수 있는 대전 하천의 경치 신가람 기자 shin9692@ |
두 번째 목적지는 갑천, 유등천이 갈라지는 Y-zone으로 결정했다. 땀이 눈 앞을 가릴 정도로 더워 아주 잠깐 다음날 다시 올까 생각도 했지만, 내일도 덥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왕 나온 김에 더 걷기로 했다.
둔산대교를 중심으로 원촌교 방향 2km 부근을 향해 출발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7시가 넘어서고 있었지만 얄밉게도 해는 넘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진 찍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해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혼자 위로 삼았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한 번씩 한숨 돌리며 돌아본 경치는 마치 자연이 내게 "수고한다"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둔산대교 부근은 첫 번째 Y-zone보다는 깔끔한 산책로였다. 인근에는 젊은이들이 텐트를 치며 맥주 한잔 곁들이는 장소이자 야경 명소로도 유명한 엑스포 대교가 있어 걱정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던 찰나 안도감이 한숨으로 바뀌는 순간이 펼쳐졌다.
누군가가 음식을 먹었던 용기가 하천 한곳에 모여있는가 하면, 심지어 내용물도 분리되지 않은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또 '낚시 금지'라는 안내판이 산책로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일부 강태공들은 안내 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고기 잡기에만 빠져있다. 떳떳을 떠나 대놓고 낚시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니 하천 관리나 단속의 어려움이 보였다.
둔산대교에서 원촌교로 가는 길목에 음식물이 담겨져 있는 용기들이 그래도 버려져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주말 오전에 찾은 불무교 인근의 대전 하천 경치 신가람 기자 shin9692@ |
다음날 찾은 줍깅 3번째 구간은 신탄진역 부근의 갑천과 금강이 갈라지는 구역이다. 맡은 구간은 유등천이지만, Y-zone 중심으로 줍깅을 하겠다는 목적에 맞춰서 이곳까지 오게 됐다. 오전 7시부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하천에는 이미 잠도 없는 매미와 잠자리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Y-zone과 700m가량 떨어진 불무교부터 금강철교가 있는 현도교까지 쓰레기를 수거했다. 시작하자마자 허리가 왜 아픈가 했더니 전날 4시간가량 쓰레기를 줍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하천 인근 풍경은 아침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색감 좋은 하늘과 구름의 조화도 적절했지만, 요즘 같은 여름은 녹색이 참 예쁜 계절이다. 시선이 마주치는 곳마다 녹색 풍경들이 마냥 보고만 있어도 힐링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틀 동안 걸으면서 수거한 각종 쓰레기들. 신가람 기자 shin9692@ |
대덕구 맹꽁이서식지 보호구역 산책로에 대형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그렇다고 마냥 초록에 둘러싸인 하천을 바라보며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제 다녀온 하천과 달리 인적이 드문 산책로긴 했지만,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 둔산대교 부근에서 쓰레기가 없네 했던 배신감을 잊을 수 없었기에.
아니나 다를까. 대덕구 맹꽁이서식지 보호구역을 지나자마자 대뜸 대형 쓰레기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쓰레기 상태를 살펴보니 버려진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Y-zone에 유동인구가 많은 구역임에도, 관리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외곽지역의 하천 관리는 더 열악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전 하천의 Y-zone 부근 쓰레기만 주웠는데도 20ℓ짜리 봉투 2개를 가득 채웠다. 걸으며 쓰레기를 주어야 하는 줍깅 특성상 스티로폼이나 대형 폐기물은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누군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또 그 누군가가 애써 허리를 굽혀 줍고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처음 목표 10㎞ 걷기였지만, 줍깅을 끝내고 나니 총 19.4㎞를 걸었다. 걸음 수는 합쳐 2만5000보였다. 누군가는 당신 하나가 고작 이틀 줍깅을 했다고 해서 어떻게 깨끗한 하천을 만들겠느냐고 헛웃음을 치겠지만, 그 사람이 한 시간만 땀 흘려 하천을 걸어본다면, 쓰레기를 주어본다면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이틀 동안 내가 흘렸던 땀방울로 하천의 생명력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유등천=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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