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의 반복, 나뭇잎이 자라고 지는 시간의 흐름을 산수로 표현하고 있어요"
흔히 산수화라 하면 자욱한 안개 사이로 돋보이는 장엄한 산을 떠올리지만, 사실 산수를 표현하는 데 어떤 특정한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산수화 작가 박혜지(30) 씨는 자신만의 독특한 산수를 그린다. 산속의 가장 작은 단위인 나뭇잎이 캔버스에 그득하다. 그가 떠올리는 산은 작은 잎들이 얽히고 설킨 숲이다. 산속을 거닐며 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작품 안에 담는다. 목원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의 산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씨의 고향은 산이 많은 옥천 청산이다. 자연스럽게 산과 풀에 친숙해질 밖에 없었다. 한지에 먹이 번지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동양화를 전공하고 산수화를 그렸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도 산수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캔버스에 나뭇잎을 채우기 시작했다.
숲 안에서 130.3×162.2cm, 장지에 혼합재료, 2020. |
그는 "산에 들어갔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산수를 그린다"며 "나뭇잎이 산속을 감싸는 듯한 느낌의 산수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다채로운 색으로 산수를 표현한다. 수묵 채색 산수화다. 한지에 먹을 칠하고 그 위에 물감으로 나뭇잎을 그려 색을 입힌다. 초록색뿐 아니라 분홍색, 보라색도 사용하는데 산에 갈 때마다 달라지는 기분과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나뭇잎이 사시사철 피고 지는 연속성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는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시간이 지나 썩어 없어지는 나뭇잎도 보인다. 소멸해가는 나뭇잎 표현을 위해 박 씨는 금박을 붙인다. 얼핏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색이 바랜 나뭇잎처럼 보여 세월의 무상함마저 느껴진다.
박 씨의 산수에는 고민의 흔적과 실험정신이 엿보인다. 산수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컬피'라는 점토 재료로 나뭇잎 모양을 만들어 붙인다. 그림에 깊이감을 주고자 한지에 색을 입혀 찢은 다음 캔버스 위에 덧붙이기도 한다. 돌가루, 나뭇잎 등 자연에서 채취한 것들을 작품 재료로 사용해보기도 했다.
박혜지 작가/ 정바름 기자 |
그는 "처음에는 채색만 하는 게 한국화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산수를 그리다 보니 다양한 재료를 많이 다뤄보고 있다"며 "여러 재료를 통해 작품을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고 감정도 달리 표현할 수 있어 다양하게 연구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한국화 특히 산수화를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박 씨는 자신만의 산수화를 꾸준히 그려 4년 전에 첫 개인전을 열고 작년에 두 번째 개인전을 치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입에 상관없이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지 비싼 가격에 그림을 판다고 해서 큰 가치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화는 한지라는 종이가 주는 따뜻한 느낌이 있다"며 "사람들이 한국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바름 기자 niya15@
스며드는Ⅱ 72.7×90.9cm, 장지에 혼합재료, 2020. |
깊어지는... 130.3×162.2cm, 장지에 혼합재료,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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