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부단히 추구하는 이상세계 '소상팔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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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부단히 추구하는 이상세계 '소상팔경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7-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심오한 자연 아닌가? 늘 생활하는 곳이라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더구나 생소한 곳에 몇 번 가보았다고 어찌 안다, 할 수 있으랴. 해외 관광은 더욱 그렇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용에 앞서, 중국 관광지에서 느끼는 첫인상은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중국 관광지는 후난성(湖南省) 장자제(張家界)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제된 우링위안(武陵源)이 있다. 상상속 마을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따온 말이다. 장자제 삼림공원, 양가계 풍경구(?家界?景?), 삭계욕풍경구(索溪??景?), 톈쯔산풍경구(天子山?景?)의 총칭이다. 300여 미터 전후의 바위기둥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웅장한 텐츠산(天子山), 7.455km 케이블카 · 99굽이 난간 · 999계단의 텐먼산(天門山), 길이 2.5km 산정호수 보봉호, 세계 2위 크기를 자랑하는 황룽동굴 등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규모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미지의 세계 판도라를 선보였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산이 있다. 판도라는 지구의 에너지 고갈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자원 언옵타늄 최대 매장지다. 언옵타늄의 자기장 속성으로 공중에 떠도는 할렐루야 산이다. 우림으로 싸여 있으며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신선하고 매혹적인 고운 모습의 산, 장자제의 바위기둥 아랫부분을 CG 처리한 것이라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자제에 수차례 갔었지만, 후난성조차 별로 아는 게 없다. 중국 정부조차 장자제를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후난성에는 이전부터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둥팅호(洞庭湖)가 있는 곳이다. 둥팅호는 중국 최고의 담수호였으나 간척사업으로 크기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다시 흘러 양쯔강(長江)으로 합류한다.



둥팅호에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오의 명장 노숙(魯肅, 172 ~ 217)이 만든 악양루(岳陽樓)가 있으며, 시성이라 불리는 두보(杜甫, 712 ~ 770)가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감동적인 시를 남겼다. 게다가 아름다운 경관으로 각광을 받았다. 북송의 이성(李成)이란 화가가 처음 그렸다고 전해지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유명세를 대신해 준다. 소상은 둥팅호에 합류하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고려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 조선 시대 내내 사랑받은 그림 소재였다. 나아가 예술 전반에 걸쳐 인용되었다. 고려 명종은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소재로 글을 짓게 하였으며,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등 많은 문인이 소상팔경시를 남겼다. 작품은 전하지 않지만, 그림은 고려의 이광필(李光弼)이 처음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안평대군이 화가에게 '소상팔경도'를 그리게 한 이후 조선 중기에는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등이, 후기에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김득신(金得臣), 이재관(李在寬) 등이 작품을 남겼다. 안평대군이 주도한 '소상팔경시첩'은 보물 1405호이다. 국립진주박물관에는 재일동포 김용두 선생이 2001년 기증한 8곡 병풍이 있다. 2015년 보물 제1864호로 지정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 누구도 동정호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지를 답사한 안휘준(安輝濬, 1940.10.25. ~ 철학박사) 교수에 의하면 8경 모두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제목과 달리, 실경이 아니라 한다. 상상하는 이상세계를 아름답게 창조해 그렸다는 말이 된다. 심상 산수화인 것이다.

둥팅호에 얽힌 아름다움, 사랑과 애증, 애환과 은일이 민가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등 판소리와 민요, 민담에도 무시로 등장한다. 이몽룡 관사가 소상팔경의 평사낙안에 있다는 둥, 강남제비가 소상강과 동정호를 지나온다는 식이다.

소상팔경은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또는 遠寺晩鐘),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석조(漁村夕照 또는 漁村落照), 소상야우(瀟湘夜雨),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이다. 순서는 조금씩 다르게 그리기도 한다. 4계절로 배치되기도 하고 시적 분위기와 운치를 위해 저녁이나 밤 풍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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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64호 '소상팔경도' 중 한 폭. 91 × 47.7cm.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그림은 진주박물관이 소장한 '소상팔경도' 중 한 폭이다. 대단한 수작이 한 사람의 애정으로 살아있다. 자연을 통해 자아 성찰했던 선조 아닌가? 볼 때마다 느낌이 달랐을 법하다. 그림마다 근경, 중경, 원경이 잘 어우러져 있어 깊이를 더한다. 과감한 생략과 섬세함이 조화되어 무한한 공간감과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보기에 따라 정적, 쓸쓸함, 외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약동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상세계는 이상세계일 뿐일까?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것이 이상세계 아닐까? 오늘도 나만의 이상세계를 그려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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