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응,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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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응, 그럴 줄 알았어"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1-07-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응, 그럴 줄 알았어."

모처럼 만에 손주들이 보고 싶어 시골서 올라오신 할머니한테 다섯 살짜리 꼬마 손녀가 쫑알쫑알 한 말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이었다.

다섯 살 된 꼬마 손녀는 오랜만에 오신 할머니께 무슨 신이 났는지 미주알고주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일러바치기라도 하듯 빼놓지 않고 죄다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동안 아빠가 꼬마를 속상하게 했거나 삐지게 한 일이 많은 것 같은 눈치였다.



"할머니, 요즘 아빠가 좀 이상해요. 바쁘다고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엄마 설거지만 하느라 정신없어요."

손녀가 일러바친 말에, 할머니는 심기가 좀 불편한 듯이, "응, 그럴 줄 알았어."

독백에 가까운 이 한 말씀을 하시곤 마냥 침묵이셨다.

아들이, 며느리가 할 설거지를 다 한다는 말에 마음이 편치 않은 눈치가 역력했다.

간단한 한 마디였지만 거기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에 시달리는 아들이 집에 와서도 며느리 등살에 설거지나 한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상했다.

며느리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팽배해지면서 며느리가 밉기까지 했다. 며느리가 당신의 아들을 부려 먹기만 한다는 안타까움에 그냥 침묵만 지키는 것이었다.

곁에 며느리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함께 있었더라면 천둥소리가 크게 날 뻔했다.

시골 할머니가 왔다가신 지 일주일쯤 됐을 때 서울 사시는 꼬마의 외할머니가 오셨다. 친구 아들 결혼 축하차 대전에 오셨다가 잠깐 들른 딸네 집이었다.

다섯 살짜리 꼬마 외손녀는 또 무슨 보고할 거라도 있는 듯 수일 전 친할머니한테 조잘거렸던 똑같은 아빠 얘기를 외할머니께 고해 바쳤다.

한참 듣고 있던 외할머니는 무슨 짐작 가는 거라도 있는 듯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응, 그럴 줄 알았어."

무심코 하신 한 말씀이었지만 얼굴엔 그늘진 구석 하나 없이 만면의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여기엔 당신의 딸을 위해 주는 사위를 생각하고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누가 봐도 자랑스러운 사위를 대견스레 생각하는 얼굴 표정임에 틀림없었다.

사위에 대한 장모의 만족해하는 표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신뢰하는 사위였었는데 외손녀의 말을 듣고서 확인이라도 한 듯 안도감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사위가 무던히도 배려심이 많아서 당연히 설거지까지 해줄 줄 알았다는 얼굴 표정임이 분명했다.

다섯 살짜리 어린 꼬마는 같은 말로써 두 할머니를 희비가 엇갈리게 했다. 친할머니 마음은 언짢고도 우울하게 해 드렸고, 외할머니 마음은 마냥 즐겁고도 흐뭇하게 만들어 놓았다.

위의 일화에서 보면 장모와 사위 사이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고부 갈등이 내재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이 집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잘 풀리지 않는 문제, 고부간의 갈등이 똬릴 틀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사소한 일에 섭섭해 하고, 오해가 생기는 것이 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고부 갈등이 아닌가 한다.

우리 가정의 가장 고질적인 고부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상호 이해와 양보밖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부간의 갈등의 그 원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세대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의견 대립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친딸 이상으로 부러울 정도 잘 지내는 가정도 있다.

허나, 고부 갈등으로 가정이 편할 날이 없어, 아들이나 며느리가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하는 가정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고부간에 피차 노력해야 할 일들이 있다.

차제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멋진 시어미니와 며느리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가. 멋진 시어머니로 대접받고 살기 위해서는,

1. 며느리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가?

2. 남에게 며느리 험담을 하지 않는가?

3. 며느리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는가?

4. 며느리의 일거일동을 참견하지는 않는가?

5. 며느리의 생일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 챙겨 주는가?

6. 결혼 때 혼수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지는 않는가?

7. 잔소리 같은 말의 되풀이로 짜증스럽게 하고 있진 않은가?

8.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지 않고, 당신의 딸처럼 대하고 있는가?

9. 평시에 며느리의 위신을 세워 주는 시어머니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나. 멋진 며느리로 사랑받고 살기 위해서는,

1. 시부모 생신 날, 어버이날을 잘 챙겨드리고 있는가?

2. 시부모님께 상냥한 말로 대답하고 인사를 하고 있는가?

3. 사치와 허영과는 거리가 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4. 전화 문안이라도 자주 드리고, 찾아뵙는 성의를 보이고 있는가?

5. 시부모 앞에서, 남편에게 투정하거나 부부싸움을 하지는 않는가?

6. 시댁 험담을 하지 않고, 시부모의 장점을 칭찬하며 살고 있는가?

7. 시부모님 용돈 정도는 챙겨드리는 마음가짐은 가지고 살고 있는가?

8. 시부모를 친정어머니, 아버지 같이 생각하고 거리감을 두지 않는가?

9. 좋든 싫든 간에 즉석에서 화를 내거나 말대꾸, 말참견을 하지 않는가?

'응, 그럴 줄 알았어.'

이 말이, 고부간의 피차 노력으로,

서로 사랑하고 웃으며 사는 삶이 됐으면 좋겠다.

장모가, 당신 딸 위해주는 사위 생각으로 흐뭇해하는 그 마음이, 바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리바꿈했으면 좋겠다.

'응, 그럴 줄 알았어.'

내 현주소는 어디가 되겠는가?

과연 서로 노력하고 믿는 것이 화목으로 힘이 솟는, 보약 처방은 될 수 있겠는가 ?

아니면, 노력 없이, 화약고 폭발을 안고 사는 갈등이 내 삶의 현주소는 아닐는지!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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