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의 가을> 1970. 91x7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지역을 대표하는 이동훈 화백을 기리기 위한 '이동훈 미술상 특별전'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대전과 충청 미술의 발전을 이룬 고 이동훈 화백의 예술 정신을 기리기 위한 이동훈 미술상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으며 지역 대표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상으로 거듭나고 있다.
더욱이 내년은 고 이동훈 선생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이동훈 미술상도 20주년을 맞는다. 미술상 시상 20주년이 되는 2022년을 일 년 앞두고 고 이동훈 화백의 작품 세계와 이동훈 미술상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편집주 주>
▲탄생 120주년 앞둔 고 이동훈 화백=이동훈 화백은 대전과 충청지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03년 평안북도 태천에서 태어난 이동훈 화백은 1945년 해방을 앞두고 대전공업학교에 교편을 잡으면서 대전에 정착했다.
1947년부터는 대전사범학교에 미술교사로 생활하면서 농어촌을 중심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환경과 목장, 대전과 충청의 영산인 계룡산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산기슭과 계곡 등 자연미와 풍경미의 정감을 화폭에 담았다.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목장의 아침'으로 특선을 받은 이동훈 선생은 이듬해인 1950년 제2회 국전에서도 목장을 그린 작품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제4회 국전부터는 추천작가로 출품해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 지역의 미술계는 물론 한국화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45년에는 미술협회 조직을 주도해 미술협회전시회를 이끌어 성황리에 성공시켰다.
이후 1969년 6월 대전을 떠나 다시 서울로 가기 전까지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이동훈 화백은 스스로도 '대전사람'이라고 칭했다.
1945년 대전에 도착한 4월과 5월 그는 일기에서 "이것으로 대전사람이 된 것이다… 4시가 지나서 돌아와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대전에 그림을 시작한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자 한다. 나는 대전의 산하와 자연을 사랑한다"라고 썼다.
<여름> 1970.116x90cm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김 연구원은 "퇴직하고 서울로 돌아간 후에도 오랜시간 선생을 그리워하는 대전 제자들의 마음이 요즘 보기드문 모습이었다"라며 "일본유학을 다녀왔지만, 도시적이고 국제적인 흐름에 올라타려는 욕망이 그림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라고 집필 소외를 밝혔다.
그는 이어 "대전의 풍경이 고향의 모습과 닮았다는 선생의 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동훈 선생은 태촌의 모습을 대전에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대전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후대들로 하여금 선생의 그림을 통해 '대전의 재발견'할 힘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 이동훈 화백. |
대구의 이인성미술상, 광주의 오지호미술상 등 몇몇 지역에서는 지역은 물론 한국미술계에 큰 공헌을 한 작가들의 이름을 딴 미술상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미술상의 권위는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성과 면모 등으로 평가된다.
한국미술에 지대한 업적과 공헌을 한 원로작가에게 수여하는 본상은 장리석, 김형구, 정점식, 서세옥, 장두건, 전혁림, 강태성, 임봉재, 하종현, 황용엽 등 한국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겨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작가들이 받았다.
유근영, 이종협, 김영대, 가국현, 한인수, 이돈희, 김병진, 박능생, 송병집, 이재황, 민성식, 신진호, 윤경림, 박정선, 박운화, 송인 등 대전·충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30~50대 작가에게 수여하는 특별상 수상자도 이제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성장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전년도 특별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제18회 특별상 수상작가인 박운화, 송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본상 수상작가인 황용엽 화백의 개인전이 열린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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