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역시 김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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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역시 김배히

김용복/ 예술 평론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5 10:4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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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히는 서양화의 대가이다.

필자와는 1970년초부터 인연이 깊다. 그는 그림을 그리되 강한 이미지의 색채를 주로 사용하고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7월23일 대전 여중 옆에 자리한 대전갤러리.

지나다가 언뜻보니 김배히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차를 돌려 세웠다.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역시 김배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시 첫날이 아닌데도 많은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었고 100호가 넘는 대형 액자들이 수십 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서양화는 여백의 미가 없다.

그러나 서양화만을 그리는 김배히 화백은 생긴 그대로가 여백의 미다. 그와 만나면 마음부터 푸근해진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해진다. 김배히 작가에서 풍기는 그야말로 여백의 미인 것이다.

여백의 미는 한국화에 그 특징이 있다.

화면 전체에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나 비단 위에 먹이나 물에 녹는 안료(顔料)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모필(毛筆)로 그리며, 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회화관(繪畵觀)과 화론(畵論)에 입각하여 그리고자 하는 대상 이외에는 색칠을 하지 않은 채 여백으로 비워둔다. 한국인의 멋인 것이다.

또한 한국화는 주로 직관적이며 되풀이하지 않고 한 번의 붓놀림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 서양화는 화면에 덧바르거나 깎는 식으로 층을 구성하며 종이나 화폭에 여백을 두지 않는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필자도 늙고 김화백도 늙었다.

그것을 벽에 걸린 수십 점의 그림들이 증명해 주었다. 화폭 속에 풍경이 아닌 인물을 담았으며, 그 인물들도 그 아내와 자신의 모습, 그리운 친구들과 정들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제자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모습을 그릴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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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히 작, 저 세상으로 떠난 김 화백의 아내를 화폭에 담았다.
화폭 속에 그려진 여인을 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아내라고 대답했다. 아내 최순경 여사라면 필자도 잘 아는 분이고 세월이 오래 흘렀다해서 못 알아볼 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혀 아닌 인물을 그려놓고 아내라 하였다. 이유를 물었다. 저 세상으로 1년 전에 떠났다 했다.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내, 그 밝은 모습의 최순경 여사가 아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듯 보이는 여인. 화가 김배히는 자신을 홀로 남겨놓고 훌쩍 떠난 아내를 야속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도 자신처럼 우울하고 서글퍼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도 내 아내 오성자를 8개월 전에 저 세상으로 보내놓고 날이면 날마다 운다. 그리워서 울고, 잘 못해 준 것이 죄스러워서 울고, 혼자 가버린 것이 야속해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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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히 작, 제자들과의 추억
이번에 대전 갤러리에 전시된 김화백의 그림에는 풍경화 그림에 나타나는 투시원근법도 없었다. 그저 옛날 사진을 꺼내 보며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골라 붓가는 대로 그리고 색칠을 했을 것이다. 마음이 어두운데 밝은 그림이 나올 수 있으며, 원근법에 의한 서양화의 사실적 묘사를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아아 김배히 화백이여! 우리 이제 놓아드리자. 나도 내 아내 오성자를 놓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십년지기 정영복 화백을 불러 'O2린' 소주로 우리 마음 달래보자.

김용복/ 예술 평론가, 칼럼니스트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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