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 걷기 매력에 빠지다…천변부터 골목까지 보행자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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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걷기 매력에 빠지다…천변부터 골목까지 보행자 물결

대전시체육회 걷기앱 1만2천 명 활동
장소 구애 없이 걷기실천, 학술 연구대상
차량속도 제한, 탄소제로 관심 영향
운동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 각광
김희수 건양대 설립자 등 '걷기=건강'

  • 승인 2021-07-21 17:20
  • 신문게재 2021-07-22 11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걷기
걷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펜데믹이 낳은 신풍속도다. 개인적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요구받는 시대에 골목, 천변, 얕은 등산로는 두 팔을 저어가며 두 다리를 쉼 없이 교차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걷지 못하는 유아는 유모차에, 걸음을 막 배운 아이는 아장아장, 몸이 가벼운 사람은 사뿐사뿐, 급한 마음으로 날쌔게 그리고 말 없이 혼자 터벅터벅 그 모양새도 다양하다. 걷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걷으면 보이는 것

대전시민들이 이용하는 걷기앱에는 하루에도 여러 장의 풍경사진이 올라온다. 대전시체육회가 걷기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한 참여자들에게 5000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지급하는 커뮤니티다. 앱을 켜고 있으면 자동으로 보행 횟수와 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굳은 커뮤니티에 접속할 필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이 오늘 걸은 소식을 짧은 메모와 사진 형식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해질녁 붉은노을이 물든 하늘이나 지금 걷고 있는 하천풍경 그리고 함께 걷는 이들과 인증사진까지 소소하지만 시민들의 일상을 담은 소식이 공유되고 있다. '대전 3대하천 걷기', '대전 전통시장 걷기' 등의 매주 달라지는 미션은 걷기에 재미를 주면서 앱에서 활동하는 대전시민은 4개월 사이 1만2000명까지 불었다.

송찬근 시체육회 생활체육부장은 "앱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걷기를 시작해 30분 이상 지속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봤을 때 걷는 문화가 확실히 정착했고, 운동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연구 대상이 된 걷기문화

혼자이면서 여럿이 할 수 있고, 신발을 갓 신어본 아이부터 지팡이를 짚은 노인까지 구별하지 않는 걷기는 이제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됐다. 특히, 샌디아고의 순레길 정도는 돼야 걷기를 말할 수 있던 시대가 종식하고 제주 올레길이 아니어도 집 주변에 골목을 걸으며 바라본 풍경과 경험이 자연스런 대화의 소재가 됐다. 김춘호 대전걷기연맹 수석부회장은 달라진 걷기문화를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접근하는 이중 한 명이다. 최근 많은 시민들이 걷기를 건강의 수단을 넘어 사회와 소통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이유를 찾고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충남대 체육교육과 스포츠사회학 박사과정의 김춘호 씨는 "걷는다는 것은 시위나 행진, 관광차원에서 조명되었으나 지금은 가족단위로 생활공간 범위 내에서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라며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환경적 감수성 증대, 도심 차량 제한속도를 30~50㎞ 이하로 줄임으로써 보행과 자가용의 격차 축소, 점심·저녁 회식 축소 이후 조직문화 유지 필요성 등에서 걷기가 선택되는 게 아닌지 연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보행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가로경관의 물리적 환경특성'처럼 걷기를 주목하는 학위논문이 최근 나오고 있으며, 건강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던 것을 시민과 도시가 얼마나 조화롭게 지내는지 측정하는 수단으로써 걷기를 연구하는 문화도 싹트고 있다.

▲걷기를 넘어 플로킹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를 하나씩 줍는 플로킹은 걷기가 낳은 공익운동이다. 비닐봉지 하나만 호주머니에 넣어 집을 나선 뒤 걸을 때 보이는 캔, 과자포장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주워와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거나 종량제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어디 골목에서 몇 시부터 플로킹을 하자는 공지가 올라오면 시간이 되는 참여자들이 나와 걸으며 대화하고 쓰레기를 줍는 동호회도 운영될 정도다. 특별히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도시 젊은 이들이 관계를 확대하고 사회에 소통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플로킹을 실천하는 조호연(29)씨는 "밴드처럼 스마트폰 앱에서 누군가 플로킹할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뜻 있는 이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형식"이라며 "대단한 게 아니라 걸으며 쓰레기 몇 개를 줍는 것인데 보람도 크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도 만들 수 있"라고 설명했다. 생활 속에서 걷기를 실천하는 성정화 도서출판 이화 대표 역시 걸으며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성정화 대표는 "출퇴근 때나 약속장소를 찾아갈 때 버스나 자가용 대신 걷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걷는 동안 운동이자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라며 "걷는 이들이 쓰레기를 하나씩 줍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초보는 없어도 고수는 있다

걷기에 서툰 사람은 많지 않아도 걷기 고수는 지역사회에 꽤 있다. 김희수(93) 건양대 설립자는 학교와 대학병원을 둘러보며 하루 기본 1만보 이상 걷기를 실천해왔으며, 최근에는 요가와 전통악기 장구를 배우며 건강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중도일보 칼럼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걷기를 강조했다. 염홍철 새마을운동중앙회장도 걷기를 통해 건강과 사회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도 일요일 이른 아침 뜻있는 몇몇 이들과 유등천을 주기적으로 걸으며 소통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전시체육회 걷기 앱에 등록된 20일 기준 하루 1만 보 이상 걸은 참여자만 711명에 달한다. 같은 날 2만 보 이상 걸은 사람은 60명으로 대전에 하천과 골목을 홀로 또는 삼삼오오 누비며 걷기를 실천하는 숨은 고수들이 적지 않다.

김동건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은 요즘 트렌드가 되지 못하고 생활에서 소소한 행복을 주는 운동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라며 "대화도 나눌 수 있고 가족부터 반려동물까지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걷기는 대표 운동이자 문화라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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