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季(끝 계, 막내 계) 布(베 포) 一(하나 일) 諾(대답할 낙, 승낙할 낙)
출처 :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비유 :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또는 틀림없이 알았다는 뜻으로 비유한다.
초(楚)나라 사람 계포(季布)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義俠心)이 강해 한번 '좋다'고 약속한 이상에는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이런 계포가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천하(天下)를 놓고 자웅(雌雄)을 겨룰 때 항우의 장수로서 출전해 몇 차례 유방을 괴롭혔는데, 항우가 패망(敗亡)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유방은 계포의 목에는 천금의 현상금을 붙였으므로 계포는 한 때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고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한고조(漢高祖)가 된 유방에 유능한 인재로 천거(薦擧)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하여 계포는 덕을 베푼 한고조에 의해 사면(赦免)과 동시에 낭중(?中)이라는 벼슬을 얻었고, 다음의 황제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將)이란 벼슬까지 올랐다.
그는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도 언제나 반드시 의(義)로운 일에 힘썼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신임(信任)과 존경(尊敬)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당시 한(漢)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여태후(呂太后/한고조 유방의 아내)에게 깔보는 투의 편지를 조정(朝廷)에 보내온 일이 있었다.
이에 진노한 여태후는 흉노 징벌(懲罰)을 위한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소집했다.
그때 일등공신인 상장군(上將軍) 번쾌(樊?)가 나서며, "저에게 10만 병력을 주십시오. 소신이 오랑캐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리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다. 신하들은 일등공신이면서 여씨 일문의 딸을 맞아서 여태후의 총애(寵愛)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번쾌에게 잘 보이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번쾌의 목을 자르십시오" 하며 감히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계포였다. 계포는 여태후에게 이르기를 "한고조(漢高祖)께서도 흉노 정벌을 위해 40만 군대를 거느리고 정벌에 나섰다가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당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번쾌는 10만으로 흉노를 응징하겠다는 것은 망발(妄發)입니다. 번쾌는 이것도 모르고 위에 아첨(阿諂)하기 위해 천하(天下)의 동란(動亂)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계포의 강한 신념(信念)에 찬 목소리에 좌우 신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계포의 목숨도 이제는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후는 즉시 폐회(閉會)를 명하였고, 그 후 다시는 흉노 징벌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여태후는 계포의 신의를 믿고 이 사건을 덮어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포에게 계포일낙의 고사성어가 적용된 것은 초(楚)나라에 조구(曹丘)라는 말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대단히 아첨을 잘하는 사람인 동시에 권세(權勢)와 금전욕(金錢欲)이 강한 사람으로 당시 황제의 외삼촌으로 최고 권력자인 두장군(竇長君)의 집에도 연신 드나들었다. 이 말을 들은 계포는 두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조구는 아부를 잘하는 사람이라 듣고 있습니다. 교제를 끊으십시오"라고 친절히 충고해 주었다.
그때 때마침 외부로의 출타를 마치고 돌아온 조구는 두장군에게 가서 계포에게 소개를 부탁하며 소개장(紹介狀)을 써달라고 하였다. 이에 두장군은 계포가 보낸 편지를 조구에게 보이며, "계포는 자네를 싫어하니 가지 말게" 하고 말했다.
그러나 조구는 억지로 소개장을 받아 쥐고 계포를 방문하여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 후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마디 승낙(承諾)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고 말하며 그 말이 이미 전설처럼 되어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유명하게 되셨습니까?" 하며 계포를 칭찬(稱讚)했다.
그러자 그렇게 조구를 못된 사람으로 취급하던 계포도 아주 좋아서 조구를 귀한 손님으로서 자기 집에 수 개 월 동안이나 머물게 하고, 있는 힘을 다해 극진히 대접했다.
그 후 조구의 혀로 인해 계포의 이름은 더욱 더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포일낙(季布一諾)'을 간단하게 줄여 '계낙(季諾)'이라고도 했으며 또한 '금낙(金諾)'이라고도 하여 '틀림없이 알았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약속은 앞으로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을 이른다.
인간이 뭇 동물들과 다른 점이 지능, 감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약속을 간과할 수 없다. 약속은 올바름과 그릇됨까지 연결되면서 인간의 생활 중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심지어 국가 간에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당위성의 존재이며 이를 어긴 자는 배반이라는 이름으로 응징의 대상이요, 영원히 함께할 존재가 못 되는 원수지간이 된다.
동양에서는 이를 믿음[信]으로 표기해왔다.
고려말(高麗末) 조선초(朝鮮初) 문신(文臣) 권근(權近)이 자신의 셋째 아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에게준 명문 네 가지[公, 勤, 實, 信]중, 信에 대하여는 信則不妄持之以誠 堅守其意 毋自變更/신즉불망지지이성 견수기의 무자변경)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곧 미더우면 경망하지 않나니 유지하기를 성심으로 하여 그 뜻을 굳게 지키고 멋대로 변경하지 말라. 이러한 교훈으로 이어진 조선은 500여 년을 잘 지켜온 것이다.
반면 아부를 좋아하고, 아첨의 말을 신봉하는 정권은 반드시 일찍 멸망함도 함께 깨우쳐야 할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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