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여성의 지위가 그 사회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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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여성의 지위가 그 사회의 수준이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1-07-19 09:29
  • 신문게재 2021-07-20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명주 충남대 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과 당 대표가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공식화하려다 다행히 안팎의 반발로 한발 물러섰다. 이는 페미니즘 '백래쉬' 시류에 편승하고, 지난 4월 7일 보궐선거 이후 보수 정권의 새로운 지지기반으로 주목받는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으려는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여가부를 폐지한 후 그 예산을 군 복무를 마친 남성을 위해 쓰겠다니 의도적으로 남녀대결을 부추기는 꼴이다. 제아무리 정당의 목표가 정권 쟁취라 해도 주거난과 취업난 등 젊은이들이 겪는 복잡한 시름을 여성 탓으로 돌리도록 유도하여 이를 정권쟁취에 이용한 것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젊은 남성의 시름은 여성 탓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우리끼리 자발적 경쟁 속에서 스스로 좌절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탓일 터, 이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되고, 시스템은 엉뚱한 대상에게 화살을 날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성차별을 해소하기는커녕 남녀대결을 부추겨 오히려 성차별을 강화한다.

물론 남녀대결은 성 평등 기획에 필요악이다. 제아무리 페미니즘의 적은 개별 남성이 아니라 가부장 시스템이라고 강변해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득권자인 개별 남성들이 가부장제의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자연히 남녀대결은 빈번하다. 다만 불가피한 대결이 남녀의 전선 너머 더 힘센 누군가, 이를테면 자본과 결탁한 정치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니 현실은 언제나 가파르다.

오늘날의 가부장제는 천상천하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자본체제와 결합해 문제가 아주 복잡하다. 흑인 페미니즘이 성차별과 더불어 흑백 인종차별과 교차하는 바람에 복잡해지듯, 우리에게도 젠더와 자본은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우리나라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선진국 분류의 기준은 무역과 투자와 수출이었다. 그런데 성 평등의 기준으로 분류하면 우리는 여전히 하위권이다. 2020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 격차지수를 보면 153개국 중에서 한국이 108위였고, 성별 임금 격차는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로 가장 열악하다. 즉, 수출로 본 한국의 지위는 상위권이지만, 고용과 임금으로 본 한국 여성의 지위는 하위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여성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여성을 경제적 수혜에서 배제함으로써 가능했음 직하다. 여성의 가사와 돌봄 노동은 사랑의 이름으로 그림자화되고, 여성의 임금 노동은 저임금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경제 선진국 진입은 성차별에 기생한 성취였다.

여가부의 폐지 운운 자체도 실은 자본, 경제, 정치와 밀접하게 얽힌 성차별이다. 나라 사정이 팍팍해질 때마다 '작은 정부'가 논의되고, '작은 정부'를 위해 폐지되어야 할 부서의 제 일 순위는 언제나 여가부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도 여가부 폐지를 운운했었다. 간신히 폐지를 모면했지만, 여가부 예산은 1년 만에 95.5%로 줄어 당시 539억 원에 불과했다. IMF 경제 위기 때도 대덕연구단지에서는 부부 연구원일 때 부인들이 직장을 포기했다. 현재 코로나는 모두에게 힘들지만, 특히 여성에게 더욱 힘들다. 직장에 잘 다니던 여성의 46.3%가 부분 휴업, 휴직, 해고, 권고사직 등 고용조정을 겪었다. 사정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정리되는 사람은 언제나 여성이다.

이번 여가부 폐지 논란은 불황 때마다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많은 여성의 불행과 닮았다. 정부 부처 중 부진했던 부처가 여가부만이 아닌데도 여가부만 유독 정리 대상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토록 만만한 모양이다. 여성의 지위는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심심하면 부르짖는 여가부 폐지 운운은 선진국 진입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이 곳곳에 만연한 우리 사회의 낮은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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