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심사정의 '노안도'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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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심사정의 '노안도'로 읽는 세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7-16 09:1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전통혼례에 전안례(奠雁禮)라는 절차가 있다. 신부 집 문전에 멍석 깔고 병풍을 두른 다음 작은 상을 놓는다. 상 앞에 신랑이 무릎 꿇고 앉아, 기럭아비에게서 나무로 만든 목안(木雁)을 받아 상위에 올려놓는다. 일어나 네 번 절 한다. 신부 어머니가 치마폭에 싸 들고 신부대기실로 옮긴다. 이때 점사(占辭)를 보기도 한다. 기러기를 던져, 기러기가 누우면 첫딸, 일어서면 첫아들 낳는다고 했다.

행복을 기원하고 성정을 닮으라는 염원, 기러기를 가슴에 담으라는 뜻이다. 기러기가 혼례에 사용되었던 첫 번째 의미는 백년해로이다.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함께 하자는 거룩한 맹세이다. 변함없는 사랑의 기약이다. 그는 짝을 잃어도 재혼하지 않고 극진히 가족을 돌보며 홀로 산다고 한다. 번식력이 강하여 다산의 기대도 담았다. 수명이 30여 년에 달해 조류로서는 긴 편이어서, 장수를 비는 마음도 담겼다. 안불고행(雁不孤行)이다. 기러기는 멀리 가기 위해 함께 난다. 같이 가기 위해 소통을 잘한다. 따라서 질서정연하다. 서로 배려하여 번갈아 가며 앞에 선다. 때를 알고 잘 지키며 방향감각이 뛰어나다. 사랑과 배려, 바람직한 지도자상과 신뢰, 단결과 협동 등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돋보인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생물이다.

상서로운 새이니 좋은 일에 인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사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아닌가? 외기러기는 외로움을 상징한다. 사랑이 큰 만큼 외로움도 큰 탓이리라. 자녀의 외국 유학으로 어머니가 따라가 있다. 글로벌시대 아닌가? 어느 한쪽의 해외 근무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요즈음 부부는 각자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내 커플이 아니면 직장 따라 각기 옮겨 다녀야 한다. 부득이 두 집, 세 집 살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기러기 가족'의 탄생이다.

'혁신 기러기'라는 말도 있다. 대도시 집중화 방지 궁여지책 중 하나가 공공기관 지방 분산이다. 지방경제 활성화, 균형발전, 중앙집중을 완화하는 긍정적 요소가 일정 부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지 않는다. 신도시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아직도 아이들은 인서울이 진학 목표 아닌가? 익숙함을 좋아한다. 교육, 문화, 사회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둘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좋은 주택까지 마련해주고 각종 인센티브가 제공되지만, 가족 모두가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래서 탄생한 것이 혁신 기러기다. 외로움이 커지고 길어지면 또 다른 불상사가 발생한다. 가정 파탄이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가정 붕괴의 증가가 기러기 가족 확산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생활 터전을 옮기는 것은 살기 좋은 동네가 먼저다. 주거지를 억지로 옮긴다고 옮겨지는 것이 아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다. 활동 중심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유동인구만 많아져 사회 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혼란과 혼잡, 생활비 가중으로 개인의 어려움도 가중된다.

우리는 철새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필요에 따라 찾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라 해서 오는 것이 아니요, 가라 해서 가는 것도 아니다. 홀연히 날아왔다 날아간다. 정치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치 철새가 새까맣게 몰려오는 시점이다.

기러기는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영모를 다룬 화가 대부분이 즐겨 그렸다. 가을을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노안도(蘆雁圖)도 그중 하나이다. 노안(老安)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렸다. 또한, 상기한 여러 의미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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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 ~ 1769)의 '노안도',1763년 작
그림은 조선 삼재 중 한 명인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 ~ 1769)의 <노안도>이다. 1763년 작이다. 말년에 인생을 정리하며 그린 것은 아닐까? 스산한 느낌이 살아있는 갈대숲이 압권이다. 우리 강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멀리 푸른 산이 보이고, 화면 중앙에 갈지자 강물이 흐른다. 살기 좋은 동네다. 화폭 중앙으로 기러기가 내려앉고 있으며, 이미 앉은 기러기는 옹기종기 모여 놀이에 열중이다. 적당한 먹이 사냥이 일이라면 일이다. 쌓아 둘 것도 없다. 세상 모두가 창고이기 때문이다. 잠 자리로 자신의 키만 한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된다. 그것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더 넓은 공간도, 더 많은 먹거리도 필요치 않다. 날다가 일하고, 하룻밤 잠자는 것이 전부다. 거기에 즐거움과 편안함이 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정과 학교, 사회와 자연이 교사이다. 그것이 인생관이 되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것이 만나 보편적 사고가 되고 집단 무의식이 된다. 물론, 같은 환경이었다고 사고가 같아질 수는 없다. 처한 위치에 따라 저마다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긍정과 부정 사이는 생각보다 멀다. 그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다만, 바람직한 문화 창출로 바로잡아 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만이 최선이다. 그림을 보며, 기러기 삶의 지혜를 음미해보자. 특히 정치 철새여 일견하시라.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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