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화 교수. |
내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정작 그 사람은 내 사랑과 내 노력에 아무런 보답을 안 한다는 것,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 속상함, 억울함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환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 환자분들의 마음의 고통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여기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인문주의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주는 것'의 의미에 관해서 설명한다. 그는 '주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주는 것'을 자신의 것을 '단념하고 희생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과 같은 괴로움을 동반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환자분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주면서 자신이 희생하고 있고 자기 삶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빼앗긴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과 빼앗김에 아무런 보답도 없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진정하게 '주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진정하게 줄 때는 '주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가진 고상한 생명력과 풍부한 잠재력을 경험하게 되고 주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주는 행위 자체에서 이미 기쁨이라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보답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또 사랑의 기본적인 요소를 배려, 책임, 존경, 지식이라고 말한다. '책임'은 '다른 사람의 욕구에 내가 응답하는 완전한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것을 해주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되고, 날 원망하지 않을까 두렵고, 다른 사람들이 날 비난하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그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냥 해주고 싶고 마땅히 해주어만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존경'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라고 말한다. 주는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좋아한다고 억울해하고 속상해한다면 이것도 역시 사랑이 아니다(물론 이성 간의 사랑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소중한 것을 주었는데 상대방은 나에게 최소한의 보답, 최소한의 감사하다는 표현마저도 안 한다고 속상하고 억울하게 느껴진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서 내 소중한 것을 준 것은 아니다. 사랑이 아닌 욕심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준 것이다. 또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무언가를 해주었다면 이것도 역시 그 사람을 사랑해서 해 준 것이 아니다. 원망과 미움 당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해준 것이다. 아들이 나 말고 자기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속상해하거나 나보다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한다고 분노한다면, 내 아들, 내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자녀, 내 아내나 남편, 내 친구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나서 속상하거나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 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창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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