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김이 모락모락, 만두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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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김이 모락모락, 만두 한 접시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1-07-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저녁 식사 중, 6시쯤 된 시각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보니 우리 아파트 옆 라인에 사는 지인 김종복 여사님 전화였다. 우리 집 호수가 몇 호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그냥 호수만 알려 달라는 거였다. 지난 1월도 귤 한 상자 가져온 적이 있어서 응답을 피하려 했다. 허나 너무나 간절한 음성이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고 나갔다.

순간 플라스틱 그릇을 싼 거 같은 검정 비닐봉지가 내 손에 쥐어졌다. 지인 이모는 만두를 갓 쪄낸 찜통 뚜껑을 덮지도 못한 채 뛰어왔다며 손에 쥔 것만 건네주고 그냥 달아나는 거였다.

식지 않은 따뜻한 만두를 바로 들게 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 숨 가쁘게 뛰어온 사연의 전부였다.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얘기대로 찐만두였다. 풀어놓은 만두 접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정갈한 흰 종이로 싸인 만두 하나하나는 이모의 정성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모의 정성과 따듯한 마음이 내 마음을 무르녹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을 위하는 정성과 사랑이 꽃보다 아름다운 김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기다 맛까지 더해주는 만두였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만두 한 접시'

만두 한 접시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세상 제일가는 행복감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만두 한 접시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가슴 하나가 이런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을까!

역시 따뜻한 가슴은 금은보화로도 감당이 안 되는,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맛있는 만두로 배를 채웠지만, 그건 만두라기보다 행복감으로 배를 채운 느낌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만두 한 접시'

이는 영락없는 행복의 전령사로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순간 나는 전령사의 마술에 걸려들어 행복의 요지경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만두접시를 들고 종종걸음쳐오는 이모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정성과 사랑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날 대신한 눈시울의 액체가 답례인사를 했다.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한 접시를 들고 달려온 이모의 행동은 그 자체가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일상적인 삶 자체가 그러한 삶인데 오늘 만두 얘기는 그런 생활의 단면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것은 그녀만의 전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표창을 한다면 훈장감임에 틀림없었다.

올 데 갈 데 없는 고아들과 미혼모의 7 남아들을 자식처럼 키워서 군대까지 보냈다는 예기를 들었다. 그리고 농아들을 위한 수화를 배워 그들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수화를 해 주는 봉사활동으로 이따금씩 들어오는 수익금을 농아협회에 기부하여 농아들을 위해 써 달라 한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모의 일거수일투족 그 자체가 가슴 따듯하게 사는 지상 천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멸사봉공(滅私奉公) 그 자체가 그녀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오늘 나를 감동시킨 만두에 얽힌 얘기는 지극히 자연스런 이모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거였다.

이 이모가 바로 그 따듯한 가슴으로 냉랭한 우리 삶을 해빙기로 만들어가며 사는 김종복 여사이다.

이 여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만두 건의 일화는 특별한 의미를 둘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당신께서 교통사고로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었을 때, 내가 문병 차 병원에 한 번 들른 것이 여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 같았다.

따뜻한 가슴에,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는지 그 때의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만두찜통의 뚜껑을 덮지도 못한 채 뛰어 온 것이 분명했다.

사람의 행복은 특별한 데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재물과 권력으로 얻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수수한 세끼 음식으로 단칸방에 살더라도 감사하며 사는 훈훈한 가슴을 가졌으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비우며 감사하는 삶이면 되는 것이다. 따듯한 가슴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게 사느냐, 불행하게 사느냐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욕심, 감사하는 마음, 따듯한 가슴'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감사하는 온혈가슴으로 욕심을 줄이며 살면, 그게 바로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이다.

욕심쟁이 냉혈가슴에 만족할 줄도, 감사할 줄 모르고 투정하는 삶이면 그게 바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우둔한 자는 가슴이 있어도 가슴 따듯하게 사는 법을 몰라 손가락질을 받는다.

현명하게 사는 자는 돈이 없어도 따뜻한 가슴 하나로 칭송받고 우러름의 대상이 된다.

냉혈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돈을 쓸 줄 몰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온혈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칭송의 대상이 된다.

이기적인 사람은 돈을 쓰고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며,

이타적인 사람은 따뜻한 가슴만으로도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김이 모락모락, 만두 한 접시'

이모 덕분에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는 보물이 나에게 왔다.

만두 한 접시 - 온 누리의 즐거움이 똬릴 틀고 있는 행복의 한 접시였다.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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