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와 수정테이프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고민과 성찰을 엿볼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대전·충청 미술을 재정립한 이동훈 화백을 기리는 이동훈 미술상의 18회 특별상 수상자인 박운화, 송인작가의 작품들이 오는 9월 22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 5전시실에서 열린다.
지역의 대표 미술상으로 평가받는 이동훈 미술상은 대전·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30-50대 작가들에게 특별상을 수여한다.
박 작가는 판화 작가로 다양한 예술기법을 활용해 입체적이면서도 정교한 판화작품을 만들어냈고, 송 작가는 한국화 작가로 먹과 붓이 아닌 수정테이프라는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박운화 작가 모습 |
판화가 각광받거나 유행하는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 작가는 꾸준히 실험적인 판화작품을 제작한다. 판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전통적인 에칭과 아쿼틴트 기법을 포함해 친콜레, 커피리프트, 콜라쥬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다.
에칭은 산(酸)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판화 방식으로 부식액 속에 담겨진 판을 바늘로 긁어 그리는 방식이다. 아쿼틴트는 판면에 송진 가루를 뿌리고 부식을 반복해 그러데이션을 만드는 기법이다. 친콜레는 판화지에 다른 종이를 붙이는 방법이며 커피리프트는 커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는 "조금 더 다른걸 추구하고 싶어하는 뭔가 색을 더하거나 형태를 더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실제로 해본다. 전혀다른 느낌의 그림이 되기 때문에 재밌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대학시절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판화 수업에서 에칭 기법을 배운 후 판화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에칭은 손의 압력과 부식 정도에 따라 선 굵기와 깊이가 결정돼 세밀한 작업에 적합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쿼틴트 역시 화학적 물질의 우연 효과에 의한 작업이기 때문에 작품이 계획대로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소소한 일상,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대학 졸업 후 일반회사에서 20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그림이 그리고 싶을 때마다 자신의 일상을 그려 서랍 속에 담아뒀다. 그때 모아둔 그림들을 하나씩 재연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아리아드네 연작 중 '아리아드네의 기다란 실'이라는 작품에는 '풀리지 않는 실마리란 없다. 천천히 침착하게 길을 찾아 나서면 찾아갈 수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 공주가 미궁에 있는 테세우스에게 길을 잃지 말라고 건네준 실타래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장을 찍어 겹친 후 바탕을 제외한 부분을 오려냈다.
박 작가는 "이 작품의 의미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란 없다"라며 "살다 보면 잘 안 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거하고 접합시켜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만들어 봤다"고 말했다.
송인 작가 모습 |
▲ 송인 작가 "사회 부조리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찾고자 했어요"
송 작가는 수정테이프라는 독특한 재료를 가지고 한국화를 그린다. 장지라는 두꺼운 한지에 먹을 여러 번 올린 다음 스케치를 하고 수정테이프를 겹겹이 쌓아 그림에 명암과 입체감을 준다. 10년 전 새로운 작품 형식이나 구상을 생각하던 중 수정테이프가 먹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수정테이프는 새로 다시 쓰기 위해서 지우는 역할을 한다"며 "수정테이프를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 일상의 아픔도 깨끗이 지우고 또 다른 환경으로 발돋음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아동폭력, 여성폭력, 언어폭력 등 사회에서 벌어지는 암울한 현실을 인물 위주로 표현한다. 사람의 표정에서 사회의 모든 면들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예술에 대해 고민하던 중 삶의 희노애락 속에 예술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인물이 주는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인물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우리 주위에 만연한 사회적 부조리, 그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가 작품에는 관계 속에 나오는 다양한 심리적 갈등과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불편함을 예술을 통해 드러내고 관객과 소통하려 한다.
그는 이번 전시 작품 중 눈 여겨봐야 할 작품으로 독립운동가들을 그린 '끝나지 않은 독립-김구' '끝나지 않는 독립-안중근'을 꼽았다. 두 작품은 전시를 위해 그린 신작으로 인물들의 시대적인 고민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2019년 독립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과거 독립운동에 생을 받친 이들을 조명했다. 중국의 문화침탈, 일본과의 독도문제, 북한과의 관계 등을 보며 지금도 불안한 시대라고 봤다.
송 작가는 "과연 우리는 진정한 독립을 이뤘을까라는 전제 하에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통해 조국의 현실, 첨예한 시대적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한중일 관계 등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는 의미로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특정한 상황에 처한 듯 손으로 눈이나 입 등을 가리고 있다. 작가는 "우리 시대에 암울한 현실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박운화·송인 작가의 수상전시는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정바름 기자 niya15@
송인, 끝나지 않은 독립-김구, 2021 |
박운화, 아리아드네의 기다란 실,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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