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의 세상읽기] 그냥, 담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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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란의 세상읽기] 그냥, 담배 이야기

  • 승인 2021-07-14 10:02
  • 수정 2021-09-13 17:10
  • 신문게재 2021-07-15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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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매캐한 냄새, 고역이다. "아저씨, 담배연기 올라와요." 타박 한마디에 누군가 후다닥 뒷꼍 어디론가 사라진다. 싫은소리 내뱉었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고 안쓰럽다. 처·자식 성화에 이웃집 눈치에 쫓겨나듯 내몰렸을 애연가의 설움. 집 밖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지 오래다.

흡연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 실제 담배연기는 4000여종의 화학물질로 이뤄졌고 69종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물질들은 폐부 깊숙이 흡수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간접 흡연으로 인한 폐해. 한 조사에 의하면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 4명 중 1명은 간접흡연 노출이 원인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 후에는 남편의 흡연이 문제. 담배연기 한 모금 입에 댄 적 없는데 암이라는 질병과 대면했을 때의 당혹감과 원망스러움이란…. 담배가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금연정책이 가혹한 형벌과도 같을 것이다. 담배의 중독성은 웬만한 마약류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문난 애연가 프로이트는 스물네살부터 담배를 피웠고, 담배를 끊으려다 우울증에 걸려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코카인에서 벗어나려 또 담배에 손을 댔고, 결국 구강암으로 숨졌다고 하니, 악마의 유혹이라는 비유가 그르지 않다.

곰방대와 찰떡궁합이 되어/ 할아버지가 몽롱하게 당했고/ 아버지도 똑같이 당했건만/나까지 넘어갈 줄이야// 예저기 사랑의 흔적 남겨놓아/ 애먼 마누라까지 바가지 긁게/ 싸잡아 이간질하는 이 가문의 철천지원수// 아들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씨도둑은 못하는 법이라서 미끈한 몸매로 까딱하면 너까지 넘보려 들 테니까// 내가 당해봐서 안다/ 한번 정을 주면 찰거머리 되어/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권오범·시인>.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이유 절절하다. "식사후 커피는 독"이라는 정보를 접하고도 달콤한 유혹 뿌리치지 못하는 카페인 중독자로서 감히 그 심정 헤어려 본다.



억울할만도 하다. 소비세, 교육세, 국민건강부담금, 폐기물 부담금, 부가가치세 등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은 대략 3000원 남짓. 탈루 염려도 없이 고스란히 국가 재정으로 들어가니 자의든 타의든 흡연자는 나라살림에 만큼은 효자노릇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거리 한 켠 그럴싸한 흡연공간이라도 만들어달라는 바람은 '소 귀에 경 읽기'다.

▶간절한 하소연에 귀 닫은 정부, 최근 흡연율을 잡겠다며 또 한번 칼을 빼들었다. 담배 소매점을 대상으로 '담배광고 노출 규제'를 강화하고 단속에 나선 것. 늘 환하게 거리를 밝혀주던 집 앞 편의점이 어둑어둑해진 이유였다.

'편의점 1~2m 앞에서 담배 거치대나 광고물이 보일 경우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2011년 제정된 이 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업계의 반발로 사문화됐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10년만에 소환됐다. 통유리문을 반투명 시트지를 붙인 편의점들, 카운터를 옮기는 대공사 대신 선택한 묘수(?)인 셈이다.

"편의점 밖에서 담배광고 안 보인다고 금연하겠나", "어떤 사람이 광고보고 맛있어 보여서 담배를 사냐", "단속은 어떻게 할건가" 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한편에선 "광고를 안보면 그 만큼 덜 피우고 싶지 않겠나", "효과가 없으면 뭣하러 광고했나", "청소년의 담배에 대한 호기심을 줄일수 있다" 단속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찬반양론 팽팽한 가운데 법은 시행됐고 생각지도 못했던 편의점 알바생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 "그간 밤길 지킴이 역할을 해오던 편의점이 되레 범죄 사각지대가 됐다"는 우려처럼 24시간 근무자 혼자 불특정 다수의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내부로 인해 범죄에 더 취약해졌다는 얘기다.

의도했든 아니든 탁상행정, 설익은 정책은 국민을 피로하게 한다. "러닝머신 속도를 6㎞ 이하로, 114bpm인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틀 수 있지만 132bpm인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안된다." 이 황당한 방역지침에 웃음이 나오는 하루다. 편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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